국민연금기금이 해외 채권투자를 통해 역대 최고인 4천억원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제4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된 2008년도 국민연금기금운용성과 평가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해외 유가증권 대여거래로 4천436억원의 재투자자산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복지부문 등 연간 수익 166억원이 더해져 총 손실액은 4천270억원으로 줄긴 했지만, 이는 국민연금기금이 해외 채권 및 주식투자를 통해 기록한 손실규모로는 사상 최대치다.

연금기금의 손실은 대부분 유가증권 대여거래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유중인 국공채나 우량회사채 등 해외유가증권을 운용사인 수탁은행에 맡기면 이 은행이 이를 기반으로 AAA등급 채권이나 RP, CD 등에 재투자, 수익을 내고 투자수익의 일정부분을 연기금에 돌려주는 형식(캐시방식)이다.

한 푼이라도 더 수익을 내기 위한 목적인데 국민연금은 2005년 6월부터 이 같은 거래방식을 통해 제법 짭짤한 수익을 냈다.

올해 5월까지만 봐도 수익이 2천641억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여기에 7조원 가까운 원금을 투자했다.

문제는 회계처리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는 회계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일정부분 수익이 발생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전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글로벌 금융기관이 쓰러지고 채권 등급이 하향조정되면서 막대한 평가손실이 나자 회계장부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난감해 진 것이다.

결국, 국민연금은 금융감독위원회의 유권해석에 따라 회계법인인 삼정KPMG의 의견을 받아들여 회계를 처리했다.

앞서 공단은 적절한 회계기준이 없어 대여수익만을 재무제표에 계상해 왔다.

하지만, 평가손실은 그야말로 장부상의 손실이어서 단기적 관점에서 '운용을 잘못했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민연금은 "해당 유가증권을 매각해 손실이 현실화된 것도 아니고 대여거래가 활발한 미국의 경우 '공적연금에 적용되는 회계기준'(GASB)에 따라 재투자자산을 시가로 평가하지 않고 원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이 같은 손실이 실질 손실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재정과장도 "국민연금이 보유한 채권은 단기 상품이 아니라 만기 5-20년짜리 장기 우량채권이어서 '손실'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지난해 손실을 기록한 채권대여가 올해는 1천억원의 수익을 올려 손실규모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손실률은 -0.21%로 일본의 후생성연금(GPIF)의 -13.9%(10조엔 규모),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27.1%,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20.2%에 비해 양호하다는 점도 국민연금의 투자성과를 안좋다고 매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복지부나 연금공단은 이번 기회에 이 같은 해외유가증권 대여거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공감한 듯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쨌든 대여거래는 기금투자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며 " 대여거래규모를 줄이거나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는 방법으로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