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산업 수요 증가로 물 부족이 심화되면서, 물 관리는 글로벌 경제와 기업 운영의 핵심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물 재이용 확대와 순환 기술 도입 등 체계적인 수자원 관리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해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경ESG] 러닝
물은 인류의 생존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이자 모든 산업 활동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는 물 부족과 수질 악화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2년 유엔(UN)이 선포한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 3월 22일)’은 물의 소중함과 지속가능한 물 관리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올해 세계 물의 날 주제는 ‘물과 젠더(Water and Gender)’다. 물 위기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은 결코 균등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여성, 즉 전 세계 여성 인구의 27.1%가 안전하게 관리되는 음용수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하루 총합 2억5000만 시간을 물을 길어오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는 물과 위생 문제가 단순한 자원 관리의 차원을 넘어 삶과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역시 물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강수 패턴이 변화하고 가뭄과 홍수 같은 극단적 기상이 빈번해지면서 안정적인 수자원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물 부족이 식량 생산과 산업 활동은 물론 지역경제 안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60%가 안정적인 물 접근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전 세계 담수 수요는 공급을 약 40%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물 관리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2024년 기준 상수도 보급률이 98%에 달해 물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일반 시민이 일상에서 물 부족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겪었던 물 부족 사태와, 현재 산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업용수 부족 문제를 보면 우리나라도 물 부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높은 인구 밀도와 산업용 용수 수요 증가로 인해 2050년 OECD 국가 중에서 물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물 리스크’
사실상 모든 산업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그중에서도 식품·음료·농업 부문은 전 세계 담수 취수량의 약 70%를 차지해 물 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식음료 산업은 제품 자체에 물이 포함되거나 물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세척(Clean-in-Place, CIP)·살균·냉각·증기 발생 등 기업의 핵심 공정 전반에 매우 많은 양의 물이 사용된다. 또한 곡물·과일·커피 원두 등 식품의 원재료를 생산하는 농업 단계에서도 대량의 물이 필요하다.
산업 전반에서 물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단순히 필요한 물을 확보해 사용하는 방식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산업계에서는 물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자원이 아니라 순환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재이용(Reuse)·절감(Reduce)·재활용(Recycle)을 중심으로 물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용수 순환(Water Circularity)’ 개념이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용수 순환은 물의 사용 주기를 최대한 연장하고, 사용 후 발생한 폐수를 정화와 재처리 과정을 거쳐 다시 공정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특히 대량의 물이 필요한 산업에서는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 전략으로서 그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첨단 산업이 확대될수록 안정적인 물 확보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용수 순환 기술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이콜랩(Ecolab) 역시 100년 이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물 사용 효율을 개선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솔루션을 제공해 왔다. 특히 디지털 기반 수처리 솔루션인 ‘3D TRASAR™’와 ‘ECOLAB 3D™’ 등을 통해 물 사용 현황과 운영상의 문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최적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수의 기업이 비효율적 용수 사용을 개선하고 물 관련 문제를 사전에 예측 및 대응해 물 사용량과 운영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물 부족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글로벌 식품 기업 A사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특정 생산 시설이 공정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에 이 회사는 이콜랩의 ‘3D TRASAR™’ 솔루션을 활용해 폐수 처리 시설에서 발생한 물을 공장의 냉각 시스템에 재활용하는 방안을 적용했다. 그 결과 폐수의 약 93%를 냉각 설비에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 전환했고, 재활용수를 통해 냉각수로 사용되던 물의 약 53%를 대체하는 효과를 거뒀다. 특히 이러한 조치는 가뭄이 심화된 시기에 공업용수 사용을 줄여 지역사회의 음용수 보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이콜랩은 세계 최대 식음료 제조 기업인 B사의 물 재사용과 CIP 프로그램을 통한 세척 효율 최적화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1년 동안 약 1억9300만 톤의 물을 절약했으며, 66일의 노동력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재무적으로 환산하면 17억7480만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냈다. 특히 제조업은 에너지 사용량의 최대 75%가 물의 이동·가열·처리 과정과 연관돼 있어 효율적인 물 관리가 비용 절감과 운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다.
기업의 물 사용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지표와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별 물 사용 효율을 비교·분석하고 최적의 운영 기준을 제시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면서 기업의 물 관리 역시 정량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전환되는 흐름이다.
물 관리,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이콜랩은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 다보스 연차총회에서 글로벌 지속가능성 평가기관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와 ‘물 사용 효율 지수(Water Use Efficiency Index)’를 선보였다. 이 지수는 산업별 최상위 물 사용 효율 범위와 최적 목표치를 제시해 기업이 자사의 물 사용 수준을 동종 업계와 비교 분석하고 개선 로드맵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이콜랩이 170개국 40개 산업의 사업장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CDP가 보유한 연간 1만 건 이상의 기업 물 공시 데이터에 기반한다.
‘물 사용 효율 지수’ 데이터에 따르면, 물 효율화 수준이 높은 탄산음료 제조 공장은 제품 1리터(ℓ)당 1.2~1.4ℓ의 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맥주 제조 공장의 경우 제품 1헥토리터( hl, 100리터)당 1.4~2.0hl 수준까지 효율을 개선한 사례가 확인됐다. 이러한 기업들은 물 재이용 및 재사용을 확대하고 세척 과정을 모니터링해 불필요한 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순환형 물 관리 전략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이처럼 물 관리가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물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은 기업 내부의 운영 개선을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한정된 자원인 ‘물’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관리하느냐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사회 전체의 안정성과도 연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 위기가 심화될수록 기술 혁신과 책임 있는 경영을 통해 물 사용을 정밀 관리하고 순환시키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물은 산업의 핵심 자원이자 동시에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