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지난 2024년 9월 출범시킨 코리아 밸류업 지수(KVI)는 지배구조 기준을 충족한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출범 이후 KVI는 코스피 200 대비 30% 이상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단순히 주가가 더 올랐다는 의미가 아니다. 학술적으로 보면 지배구조가 건전한 기업은 구조적으로 베타(개별 주식의 변동성을 시장 전체의 변동성과 비교해서 측정하는 위험 지표)가 낮다.
옥스퍼드 아카데믹(Oxford Academic)에 게재된 최근 연구(2025)는 48개국 3만3831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사회 독립성 개혁이 시행된 후 해당 기업의 주가 변동성이 평균 20% 하락했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배구조가 되면, 경영진의 자의적 의사결정이 줄어들면서 주가가 안정된다는 것이다.
일본 상장사를 분석한 PMC 연구도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거버넌스 점수가 높은 기업은 정상 시기든 위기 시기든 주가 변동성이 일관되게 낮았다. 쉽게 말해 거버넌스가 좋은 기업은 ‘덜 출렁이면서 더 오른다.’
거버넌스 개혁, 수익률 30% 격차 만들어
이러한 학술적 분석들이 지금 중요한 이유는 투자자들이 실제로 이 밸류에이션 시그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AllianceBernstein, 운용자산 약 800조 원)은 KVI의 초과수익이 단순 상장지수펀드(ETF) 유입이 아니라 거버넌스와 투자수익률 간 구조적 상관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튜아시아(Matthews Asia, 아시아 전문 운용사)는 한국의 거버넌스 개혁이 투자수익률을 지탱하는 핵심 동인이라고 진단하면서, 과거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적용해 온 ‘거버넌스 리스크 프리미엄’이 정책 개혁을 통해 실질적으로 완화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낮은 베타는 곧 낮은 할인율이고, 낮은 할인율은 곧 높은 적정가치로 이어진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메커니즘이 학술적 근거와 시장 데이터 양쪽에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3월 ‘슈퍼 주총 위크’(211개 사 개최)에서 이러한 흐름은 현실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지난 3월 12일, 상법 개정 취지를 우회하는 기업에 원칙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사 정원 축소를 통한 주주제안 봉쇄, 이사 임기 유연화를 빌미로 한 시차임기제 악용, 전자주총 정관 배제 등이 반대 대상이다. 의결권 행사 방향의 사전 공개 범위도 ‘지분 10% 이상’에서 ‘5% 이상’ 보유 기업으로 대폭 확대했다. 1458조 원을 운용하는 세계 3위 연기금이 거버넌스 후퇴 기업에 칼을 빼든 것이다.
예고는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책위는 실제로 이사 정원 축소나 임기 단축 등 개정 상법의 취지를 우회하는 정관 변경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집중투표제 청구 가능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기업에 대해서는 양측 후보에 의결권을 분할 행사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개입도 나타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도 직접적이다. 영국계 팰리서캐피털은 LG화학에 순자산가치(NAV) 74% 할인(69조 원 괴리)을 지적하며 선임독립이사 도입과 NAV 할인율·자기자본이익률(ROE)의 경영진 KPI 반영을 요구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DB손해보험에 주가수익비율(PER) 5.4배·주가순자산비율(PBR) 0.4배의 저평가를 지적하는 공개주주서한을 보냈고, 이미 JB금융지주 이사회에 추천 사외이사 2명을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금융지주에서 화학·보험까지, 주주서한이 실제 이사회를 바꾸고 있다.
집중투표제·3%룰 시행… 기업 대응 뚜렷하게 갈릴 듯
이처럼 기관투자자가 반대표를 실제로 행사하고,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서한과 이사 추천을 통해 이사회 구성을 바꾸기 시작한 가운데, 제도 변화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3월 18일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시차임기제 도입 근거 마련, 감사위원 분리선출 상향, 전자주총 도입을 일괄 가결하면서 보유 자사주 8700만 주(약 16조 원)의 소각 계획도 승인받았다. 삼성SDS와 삼성생명도 같은 날 집중투표제 도입을 처리했다.
올해 상장사 전체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이미 46조 원에 달해 지난해 연간 두 배를 넘어서는 속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이사 정원을 축소하거나 임기를 ‘3년 이내’로 변경해 시차임기제로 활용하려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대응 격차는 경영진의 상황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9월 10일 집중투표제 의무 시행과 7월 23일 합산 3%룰 적용이 결합되면 소수주주의 이사회 진입 경로가 법적으로 열린다. 선제적으로 정관을 정비한 기업은 제도 리스크가 해소된 것으로 평가받겠지만, 대응이 늦은 기업의 경영진에게는 경영권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의 투자 동향도 양극화될 전망이다. 거버넌스를 선제적으로 정비한 기업은 기관투자자의 투자 유니버스에 편입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은 행동주의 캠페인을 통해 이사회 재편이 가능한 이벤트 드리븐 기회를 제외하면 유니버스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7월부터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이 신설돼 최대 150개 사가 거래소에서 퇴출 대상이 되는 것처럼, 거버넌스 미달 기업도 거래소가 아닌 투자자의 유니버스에서 퇴출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거버넌스가 좋은 기업은 덜 출렁이면서 더 오른다. 학술이 증명하고, 시장이 확인했으며 이제는 제도가 이를 강제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10년 걸린 변화를 상법 개정 2년 만에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거래소가 동전주를 퇴출하듯, 투자자도 거버넌스 미달 기업을 유니버스에서 걸러내는 시대다. 30%의 격차가 다음에는 어떤 기업에서 벌어질지, ESG 투자자라면 지금 들여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