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100년 기업이 더 많이 나오려면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녹은 죽음을 비켜 간 인물이다. 365년을 살다가 승천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에노키안협회(Les Hokiens)’는 이 에녹에서 명칭을 따왔다. 세계적인 장수기업이 모인 이 단체에는 200년 이상 지속한 기업만 가입할 수 있다. 설립자 후손이 대주주로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지표도 건전해야 한다. 현재 회원사는 56개. 717년 창업한 일본 숙박업체 호시, 498년 역사의 이탈리아 총기 회사 베레타, 1796년 세워진 프랑스 철사 제조기업 VMC 등이다.

100년이 넘은 기업은 훨씬 많다. 독일만 해도 5300곳 정도다. 3만7000여 개에 이르는 일본은 그야말로 장수기업 천국이다. 한국의 100년 기업은 1896년 설립된 두산을 비롯해 동화약품(1897년), 몽고식품(1905년) 등 10여 개에 그친다. 50년을 넘긴 기업도 3000개를 밑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기업이 성장할 토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최고세율 60%의 과도한 상속세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유럽에선 60%가 승계 기업

기업이 장수할수록 사회적, 경제적 기여 효과는 커진다. 30년 이상 기업은 10년 미만 기업에 비해 매출이 19배, 고용 인원은 11배, 법인세는 32배 높다는 것이 중소기업중앙회의 분석이다. 기업이 100년, 2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가족을 통한 승계다. 여러 나라에서 보편화된 현상이기도 하다. 영국, 독일 등은 전체 기업의 60% 이상이 가족기업이다. 승계기업은 미래세대를 의식해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수립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성장을 위해 투자도 지속한다. 경제적 선순환 구조다. 반면 승계가 어려워 매각에 나서는 기업은 투자를 꺼리기 마련이다. 장기간 축적된 기술이나 경영기법도 사장되기 쉽다. 승계를 통한 승수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이유다.

불합리한 규제 더 걷어내야

한국은 특히 고령화 속도가 빨라 기업의 승계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 중 60대 이상 최고경영자(CEO) 비율은 2014년 22.8%에서 2021년 36.7%로 높아졌다. 한국경제신문이 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기업은행과 ‘대한민국 100년 기업상’을 제정한 건 이런 배경에서다. 지난 2일 기업승계 희망포럼에서 삼진식품(1953년), 선일금고제작(1974년) 등 10개 업체가 첫 수상자로 뽑혔다.

이런 기업은 100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기업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 승계 관련 제도가 꾸준히 개선됐지만, 모래주머니를 더 걷어내야 한다. 업종을 변경하면 승계 시 세제 지원을 못 받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융복합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다. 1756년 창업한 독일 기업 하니엘은 무역업, 광산업, 의약품 도매업 등 변화무쌍한 변신을 거듭했다. 업력이 짧은 스타트업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 불균형도 해소해야 할 일이다. 정책의 효과는 자잘한 기업의 수가 아니라 질로 평가할 일이다.

여건만 갖춰지면 한국에도 얼마든지 ‘에노키안’이 등장할 수 있다. 세계 최장수 기업은 578년 창업한 일본 목조건축회사 곤고구미다. 설립자는 백제에서 건너간 건축 장인 류중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