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고려사' 완간 간담회…"다음에는 해방 후 역사 그릴 것"
"'최고의 정치가' 정몽주·'그릇 큰 지도자' 왕건 등 고려에는 인상적인 인물 많죠"

"저한테 고려시대에 살아보라고 하면 살고 싶은 시기를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항상 고난이 많았거든요.

그런데도 고려라는 나라가 오래 존속할 수 있게 한 힘, 이것이 고려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작지만 강한 나라였던 것이지요.

"
500년 고려史 만화 그린 박시백 작가 "고려, 작지만 강한 나라"
박시백(60) 작가는 17일 서울 마포구 휴머니스트 본사에서 열린 '박시백의 고려사'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사 500년을 관통하는 국가 정체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박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건 역사만화 시리즈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고려사'를 그린 만화가다.

총 1천년에 달하는 역사를 담아낸 이 만화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을 정사 자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완간된 '박시백의 고려사' 시리즈는 고려사 139권, 고려사절요 35권을 단 5권짜리 만화로 녹여냈다.

박 작가는 "제 책은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소개서이기도 하다"며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제 나름의 해석을 첨가했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고려사의 경우 고려 전반기 기록이 간략해 이를 만화로 풀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광종의 과거제 실시, 노비안검법 같은 경우에도 그냥 '노비안검법을 실시했다'라는 기록으로 끝나더라"고 털어놨다.

500년 고려史 만화 그린 박시백 작가 "고려, 작지만 강한 나라"
박 작가는 고려사에 빛나는 인물들에 주목했다.

그는 "고려사에 인상적인 인물들이 있다"며 "'고려거란전쟁'으로 잘 알려진 양규 장군의 경우 전투에서 계속 이기고, 마지막 전투에서는 상대가 쫓기는 와중에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걸고 싸우다가 숨을 거둔다"고 설명했다.

500년 고려 역사에서 가장 걸출하고 강렬한 인물로는 왕건과 정몽주를 꼽았다.

박 작가는 "태조 왕건은 그 시대의 요구를 잘 파악했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꿰고 있던 지도자"라며 "분열된 삼한을 통일해야 한다는 과제가 요구되던 시기에 가장 (맞는) 그릇이 큰 리더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든 어느 시대든 당대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는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몽주에 대해서는 "최고의 정치가"라고 극찬하며 "고려가 무너져가고 이성계가 사실상 모든 것을 장악한 상황에서 무장력이 없던 개인으로서,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간파했다"고 설명했다.

또 사대주의자로 폄하되는 김부식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도 우리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 부분이 적지 않고, 묘청의 난 진압 과정에서도 백성의 피해를 최소화했다"며 "당대 정치가나 학자로서 탁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들을 기존 사극이나 대중매체에서 다룬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해석으로 그려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로 익숙한 궁예 캐릭터에 안대를 씌우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500년 고려史 만화 그린 박시백 작가 "고려, 작지만 강한 나라"
박 작가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시사만화가로 일하다가 2001년 돌연 사직하고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2003년 1권이 나온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는 2013년 총 20권으로 완간됐다.

그는 "당시에는 내가 빨리 그리지 않으면 누군가 (조선왕조실록 만화를) 해버릴 것만 같았다"며 "그래서 회사부터 그만두는 아주 이상한 결정을 했다.

젊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음 작업은 해방 이후의 근현대사 만화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간에는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와 같은 정사를 큰 줄기로 삼아 만화를 구성했다면, 해방 이후 근현대사는 그 당시 신문 등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는 좀 더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저 역시도 창작 만화를 해보고 싶어 했고, 시도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굳었는지 쉽지 않아요.

결국 역사만화를 할 것 같고, 해방 이후의 역사를 다룰 것 같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