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지켜온 20년 여정…"함께 만든 역사, '본보기'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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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김홍남 이사장…최순우 옛집 등 보존
"삶의 흔적 남은 문화 현장 제대로 지켜야…전통과 현대 공존 중요" "우리가 사랑하는 경주 석굴암, 불국사를 생각해보세요.
그 공간이 사라지고 유물만 남는다면 괜찮을까요?"
김홍남(76)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위해서는 유물뿐 아니라 문화 현장을 함께 지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의 후원과 모금, 기증으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지키는 활동을 뜻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산하 문화유산위원회로 첫발을 내디딘 뒤, 2004년 4월 재단 법인으로 출범하며 문화유산 보존 운동을 이끈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최순우 옛집'에서 만난 김홍남 이사장은 "나는 액션(action)만 했을 뿐 함께해 온 많은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후원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의 표현과 달리, 김 이사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재단과 문화유산 보존 운동이 가능했다는 게 문화계 안팎의 평가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한 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시아소사이어티 록펠러동양미술관 등 주요 박물관 관련 기관에서 연구했다.
1991년부터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화여대 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등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60년 역사상 외부 인사로서는 첫 수장이자 최초의 여성 관장을 지낸 바 있다.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의 안목과 자취가 담겨 있는 집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모은 것도 바로 그다.
김 이사장은 "첫 시민문화유산은 우리의 집, 한옥이었으면 했다"며 "우연히 최순우 선생님의 집을 알게 됐는데 매매 계약이 이미 진행된 터라 부랴부랴 나섰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한국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집이니 팔지 말라고, 개발하지 말라고 가족을 설득했죠. 아침 6시인가 이 집에 와서 '관장님, 저 이 집 지키고 싶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다 용기를 얻었어요.
" (웃음)
그는 그 길로 문화유산 분야 주요 인사에게 전화를 돌려 도움을 요청했다.
최순우 선생의 책을 펴낸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이 힘을 보탰다.
김 이사장은 "누군가는 장독대를, 또 다른 누군가는 나무와 석물을 채웠다.
함께 뜻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모으다 보니 지금의 '최순우 옛집'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며 떠올렸다.
1936년에 지어진 근대 한옥인 전남 나주 도래마을 옛집을 보존 기금으로 매입하고,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유족으로부터 아틀리에를 기증받으면서 현재 시민문화유산은 3건까지 늘었다.
김 이사장은 "단순히 보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집, 그 공간을 살았던 이의 흔적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고마운 사람이 있냐는 물음에 한참을 고민한 뒤,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을 꼽으며 "옛집을, 삶의 흔적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과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라고 말했다.
20년 내공이 생겼으나, 재단을 운영하는 건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올해 2월 기준 재단의 수입 지출 명세서에 따르면 기부와 모금, 사업 수익을 모두 합친 월 수익은 1천900여만 원. 각종 비용을 제하면 남는 금액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오랜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법한 빠듯한 살림이다.
김 이사장은 "어떤 상황에도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 흔적을 기억하는 '롤 모델'(Role model·본보기)이 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문화유산 분야에 몸담은 그는 약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동안 주요 현안과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관에서는 관장이 20∼30년간 자리를 맡아 자신의 의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기관장 임기가 2∼3년에 불과하다"며 "문화를 정치 권력화하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최근 문화유산 분야에서 연구를 비롯한 각종 사업 용역이 보편화한 것과 관련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직원을 뽑아 책임지고 사업을 맡기면 될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김 이사장이 특히 주의 깊게 보는 분야는 고고 발굴 유적이다.
그는 "전국 곳곳에 우리 역사의 흔적과 족적이 남아있는데 이를 제대로 보존하기는커녕 엉터리로 관리하거나 개발하고 있다"며 "정말 가슴 아프고 아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인돌을 비롯해 청동기 시대 유구(遺構·옛날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가 대거 출토된 강원 춘천 중도 유적과 레고랜드 사례를 거론하며 "현장을 보고 울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역사 문헌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현장이 우선"이라며 "지금이라고 고고학 발굴 현실을 고민하고 새로운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농담처럼 "몇 년만 젊었어도 나섰을 것"이라고 했지만, 오랜 고민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김 이사장에게 옛 시간과 문화를 복원하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중요하잖아요.
" (웃음) /연합뉴스
"삶의 흔적 남은 문화 현장 제대로 지켜야…전통과 현대 공존 중요" "우리가 사랑하는 경주 석굴암, 불국사를 생각해보세요.
그 공간이 사라지고 유물만 남는다면 괜찮을까요?"
김홍남(76)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위해서는 유물뿐 아니라 문화 현장을 함께 지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의 후원과 모금, 기증으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지키는 활동을 뜻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산하 문화유산위원회로 첫발을 내디딘 뒤, 2004년 4월 재단 법인으로 출범하며 문화유산 보존 운동을 이끈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최순우 옛집'에서 만난 김홍남 이사장은 "나는 액션(action)만 했을 뿐 함께해 온 많은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후원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의 표현과 달리, 김 이사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재단과 문화유산 보존 운동이 가능했다는 게 문화계 안팎의 평가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한 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시아소사이어티 록펠러동양미술관 등 주요 박물관 관련 기관에서 연구했다.
1991년부터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화여대 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등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60년 역사상 외부 인사로서는 첫 수장이자 최초의 여성 관장을 지낸 바 있다.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의 안목과 자취가 담겨 있는 집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모은 것도 바로 그다.
김 이사장은 "첫 시민문화유산은 우리의 집, 한옥이었으면 했다"며 "우연히 최순우 선생님의 집을 알게 됐는데 매매 계약이 이미 진행된 터라 부랴부랴 나섰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한국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집이니 팔지 말라고, 개발하지 말라고 가족을 설득했죠. 아침 6시인가 이 집에 와서 '관장님, 저 이 집 지키고 싶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다 용기를 얻었어요.
" (웃음)
그는 그 길로 문화유산 분야 주요 인사에게 전화를 돌려 도움을 요청했다.
최순우 선생의 책을 펴낸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이 힘을 보탰다.
김 이사장은 "누군가는 장독대를, 또 다른 누군가는 나무와 석물을 채웠다.
함께 뜻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모으다 보니 지금의 '최순우 옛집'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며 떠올렸다.
1936년에 지어진 근대 한옥인 전남 나주 도래마을 옛집을 보존 기금으로 매입하고, 조각가 권진규(1922∼1973) 유족으로부터 아틀리에를 기증받으면서 현재 시민문화유산은 3건까지 늘었다.
김 이사장은 "단순히 보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집, 그 공간을 살았던 이의 흔적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고마운 사람이 있냐는 물음에 한참을 고민한 뒤,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을 꼽으며 "옛집을, 삶의 흔적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과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라고 말했다.
20년 내공이 생겼으나, 재단을 운영하는 건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올해 2월 기준 재단의 수입 지출 명세서에 따르면 기부와 모금, 사업 수익을 모두 합친 월 수익은 1천900여만 원. 각종 비용을 제하면 남는 금액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오랜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법한 빠듯한 살림이다.
김 이사장은 "어떤 상황에도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 흔적을 기억하는 '롤 모델'(Role model·본보기)이 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문화유산 분야에 몸담은 그는 약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동안 주요 현안과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관에서는 관장이 20∼30년간 자리를 맡아 자신의 의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기관장 임기가 2∼3년에 불과하다"며 "문화를 정치 권력화하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최근 문화유산 분야에서 연구를 비롯한 각종 사업 용역이 보편화한 것과 관련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직원을 뽑아 책임지고 사업을 맡기면 될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김 이사장이 특히 주의 깊게 보는 분야는 고고 발굴 유적이다.
그는 "전국 곳곳에 우리 역사의 흔적과 족적이 남아있는데 이를 제대로 보존하기는커녕 엉터리로 관리하거나 개발하고 있다"며 "정말 가슴 아프고 아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인돌을 비롯해 청동기 시대 유구(遺構·옛날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가 대거 출토된 강원 춘천 중도 유적과 레고랜드 사례를 거론하며 "현장을 보고 울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역사 문헌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현장이 우선"이라며 "지금이라고 고고학 발굴 현실을 고민하고 새로운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농담처럼 "몇 년만 젊었어도 나섰을 것"이라고 했지만, 오랜 고민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김 이사장에게 옛 시간과 문화를 복원하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중요하잖아요.
"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