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시공사가 망했어요"…지방 부동산시장 살얼음판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익숙하지도 않은 개념이지만 내 집 마련을 앞둔 사람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단어가 됐다. PF 대출 시장 문제가 악화하면 이미 청약해 입주를 앞둔 아파트도, 청약을 기다리고 있는 단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특히 아파트가 아닌 오피스텔 등 준주택, 비주택 상품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는 원금을 고스란히 잃을 수 있다.

갑자기 이자 내라니…“입주하면 다행”

2022년 분양한 충남 ‘아산 아르니퍼스트’는 올해 1월 공정률 30%대로 공사가 중단됐다. 시공을 맡은 국내 도급 순위 105위 새천년종합건설이 지난 2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무이자 조건으로 중도금 대출받았던 분양계약자는 이자를 모두 떠안게 됐다. 예정됐던 내년 입주도 불투명해져 계약자는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공사가 중단된 서울 논현동의 한 오피스 부지.
공사가 중단된 서울 논현동의 한 오피스 부지.
3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는 반드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이 사업장 역시 HUG가 분양금을 돌려주는 ‘환급 이행’을 하거나 새로운 시공사를 선정해 시공을 이어 나가게 된다.

지역 미분양 증가에 부동산 PF 시장 경색도 겹치면서 보증사고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3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보증사고는 지난해에만 14건, 피해 금액은 1조1210억 원에 달한다. 올해는 1~2월 두 달 사이에만 5건이 발생했다. 임대보증사고 금액은 2134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약 224% 증가했다.

줄줄이 법정관리, 워크아웃 ‘공포’

특히 지방에서 분양받은 입주민의 우려가 크다. 전국 122위, 경기 20위권의 선원건설이 지난 2월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전남 지역을 연고로 전국 99위 수준의 한국건설도 자금 경색으로 입주예정자들에게 대출이자를 지급하라고 통보하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울산 지역의 부강종합건설과 인천 지역의 영동건설 역시 최근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에 돌입한 태영건설이 시공하는 아파트 입주민도 전전긍긍이다. 태영건설이 올해 완공을 앞둔 공동주택 및 상업시설 등 사업장만 전국 42곳, 남아있는 계약 잔금만 1조원에 달한다. 지난달 1308가구 규모의 경기 용인 8구역 재개발(용인드마크데시앙)이 입주를 시작했고, 4월에는 전북 전주 에코시티데시앙 15블록(748가구), 경남 신진주역세권 공동주택 개발사업(810가구)이 준공될 예정이다. 7월과 8월에는 대전 천동3구역 4블록 공동주택과 서울 구로구 개봉동 청년주택 개발사업 준공이 예정돼 있다.
"우리 아파트 시공사가 망했어요"…지방 부동산시장 살얼음판
태영에 따르면 용인 드마크데시앙은 지난달 31일부터 입주를 시작해 나흘 만에 30%의 입주율을 기록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한 경남 양산신도시 ‘사송 더샵데시앙3차’은 현재 입주율 80%를 기록 중이다. 다만 워크아웃을 둘러싸고 채권단과 태영그룹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법정관리로 넘어간다면 대부분 사업장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가 ‘뇌관’

내 집 마련의 수단인 주택 분양이 갖는 의미가 큰 만큼 최근의 관심사는 아파트에 몰려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분양상품이 다양해지고 아파트와 비슷한 상품인 양 과장·과대 홍보해온 사업장도 많아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주택은 의무적으로 HUG 보증(30가구 이상)을 받기 때문에 시공사가 부도가 나거나 법정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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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신청하면 여러 가지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새 시공사를 선정해 사업을 계속하거나 낸 돈을 돌려받는 식이다. 주택은 최소한 본전은 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비주택 사업장은 고스란히 손실을 보게 된다.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지식산업센터, 도시형생활주택, 생활형숙박시설 등이 대표적이다. 입지 등이 좋지 않아 미분양 우려가 크면 클수록 기존 분양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높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건축 중이거나 예정인 지식산업센터는 1543곳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지식산업센터 관련 대출은 PF 부실의 새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대출 규모와 연체율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