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한 달 넘게 꾸준히 상승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직후인 작년 10월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석유·가스 시설을 집중 공격해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 가운데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중동 일대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이란이 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고유가가 장기화하고 인플레이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브렌트유 5개월 만에 90달러 돌파

국제유가 100弗 째깍째깍…다시 인플레 공포
4일(현지시간)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1.3달러(1.5%) 오른 배럴당 90.65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 선물이 배럴당 90달러를 넘긴 것은 작년 10월 말 이후 5개월여 만이다. 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도 1.16달러(1.36%) 상승한 86.59달러에 장을 마쳤다. 최근 한 달간 WTI는 10.8%, 브렌트유는 12.3% 급등했다. 최근 유가 상승의 직접적 원인은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폭격 이후 중동 일대에 감도는 확전 위험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비해 바레인,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터키 주재 자국 대사관 직원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지난달부터 유가를 밀어 올린 공급 차질 문제도 여전하다. 원유 수급 차질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인공지능(AI) 드론이 러시아의 전자 방어망을 뚫고 잇따라 주요 에너지 수출 시설을 공습하면서 빚어졌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러시아의 석유·가스 수출 능력이 최대 14%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오는 6월 대선을 앞둔 멕시코에선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가 미국과 아시아 등의 정유사와 공급 계약을 취소하며 원유 공급을 줄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호재를 맞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 카르텔인 OPEC+는 지난 3일 열린 장관급 회의에서 올해 2분기까지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브렌트유 전망치를 배럴당 평균 86달러로 예상하며 올여름에는 최고 9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반니 스타우노보 UBS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최근 유가 상승은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다시 고조된 데 기인했고 예상보다 양호한 수요와 석유 생산 감소 등 펀더멘털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평균 가격(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2.1달러)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유가가 지속되면 제조업 원가와 운송비, 냉난방비 등 다양한 부문에서 가격 상승 압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물가가 불안정해지면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져 결국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란 불안감도 감돌고 있다.

유가는 11월 미국 대선 등 각국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상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악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은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유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으니 러시아 정유소 공격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한경제/이현일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