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피씨엘 대표
김소연 피씨엘 대표
“백신 회사는 국가에 제대로 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재무적 투자자(FI)보다 전략적 투자자(SI)의 인수가 필요합니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5일 한경바이오인사이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피씨엘은 백신 전문업체 보령바이오파마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인수전을 두고 “백신과 치킨은 같은 선상에서 경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책자금, 국민 혜택 돌아가는 곳에 투자해야

보령바이오파마는 보령그룹의 계열사이다. 최대주주는 보령파트너스(지분 69.3%)이다. 오너 3세 김정균 보령 대표와 특수관계인이 보령파트너스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지난해 보령은 보령바이오파마의 지분 10%만 남기고 90%의 지분을 매물로 내놓았다.

현재 피씨엘은 SI, 기관투자자 등과 연합해 보령바이오파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외에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유진프라이빗에쿼티(유진PE)와 산업은행 컨소시엄이 보령바이오파마 인수를 추진한다. 양측이 제시한 금액은 4000억원대 중반대의 밸류에이션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자금이 FI에 투입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산업은행은 국내 산업 활성화를 위해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책은행”이라며 “산업은행 자금은 국내 기술력이 높은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은행의 취지를 잘 살려 산업적 시너지를 키워갈 수 있는 곳에 최우선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기술력을 가진 SI에 투자를 해야만 코로나19 백신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감염병 등 국가 재난과 밀접한 백신은 식품과 유통, 제조업 등의 경영과 전혀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투자금 회수 목적의 FI보다 전문적인 SI의 인수가 더 적합하다고 봤다.

김 대표는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목표는 비싸게 되파는 것”이라며 “치킨, 피자 등은 원가절감, 구조조정, 가맹점주의 비용을 올리면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백신 사업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보령바이오파마의 백신 원가를 분석해 보면 더 이상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다른 산업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제약·바이오회사의 경영은 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감염병 전문가이다.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혈액을 통해 매개되는 감염성 바이러스의 인체침투를 막는 방법을 연구해 생화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LG화학 선임연구원으로 혈액과 관련된 압타머,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등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청사진 “글로벌 백신 회사로 키울 것”

김 대표는 보령바이오파마 인수 이후 구체적인 청사진도 준비 완료했다. 국내 상장을 넘어 글로벌 백신 회사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다. 그는 “보령바이오파마가 연매출 1700억원에서 5000억원, 1조원까지 성장하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품목을 늘리거나 글로벌에 진출해야 한다”고 했다.

피씨엘은 이미 진단키트 수출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은 국가를 중심으로 백신 틈새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동남아시아는 일본 백신,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 중국 백신이 선점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본의 백신 가격은 비싸고, 중국 백신은 저렴한 대신 품질 신뢰도가 떨어져 틈새시장이 많다”고 했다.

이어 “피씨엘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모로코와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진단키트 제품을 수출하며 현지 네트워크를 탄탄히 구축했다”며 “국내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보령바이오파마가 해외 시장 개척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게 할 수 있다”이라고 했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 신규 플랫폼 백신 개발에도 대규모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소아 백신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mRNA 등 새로운 플랫폼의 백신 개발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 세계 백신 시장에서 소아용 제품 매출 비중은 2019년 기준 58%, 2024년 56% 정도다.

보령바이오파마가 진출하지 않았던 혈액제제 사업도 구상 중이다. 김 대표는 “혈액에서 항체를 뽑은 게 백신”이라며 “국내 백신 회사들이 백신뿐만 아니라 혈액제제에서도 많은 매출을 내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보령바이오파마의 인수는 FI가 아닌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SI가 적합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가 한국의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오랜 기간 R&D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재매각으로 차익을 남기는 게 목적인 FI의 백신 회사 인수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라고 덧붙였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