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제일제당
사진=CJ제일제당
직장인 전진범 씨(33)는 지난 19일 온라인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CJ제일제당의 햇반 24개들이 제품을 1만8000원가량에 샀다. 알리익스프레스가 창립 기념으로 뿌린 할인 코드를 이용해보니 공식 온라인 쇼핑몰(2만3400원)보다 최종 가격이 5000원 이상 저렴했기 때문. 전 씨는 “맞벌이 부부라 햇반을 자주 사서 먹는다”며 “처음으로 알리를 이용해봤는데, 국내 제품을 이렇게 싸게 판다면 이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알리·테무 국내 공습 본격화

알리익스프레스의 '1000억 페스타' 화면. 앱 화면 캡처
알리익스프레스의 '1000억 페스타' 화면. 앱 화면 캡처
중국 알리바바의 직구 몰 알리익스프레스가 지난 18일부터 창립 14주년 기념 세일에 돌입하면서 국내 온라인 쇼핑몰 소비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광군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에 맞춰 할인 판매 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국내 공습’이 이번 세일 기간에 펼쳐지고 있다. 국내 신선식품 등을 1000원에 파는 ‘1000억 페스타’ 뿐만이 아니다. 국내 이용자들이 많이 구매하는 의류, 전자기기, 생필품 위주로 국내 유튜버들이 프로모코드를 뿌리다시피 하면서 처음으로 알리를 이용해봤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판매자 할인, 유튜버 할인 등을 잘 이용하면 국내 온라인 쇼핑몰로는 불가능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30세대’ 남성들은 1~2년 전부터 알리를 통해 전자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30대 김모 씨는 유명 IT 유튜버가 지난 18일 오후 4시에 채널에 공개한 프로모코드를 입력해 미니 PC를 시중가 대비 5만원, 기존 알리 가격 대비 3만원 이상 싼 14만원에 구매했다. 그는 “평소 구독하는 10여명의 IT 유튜버 대부분이 이번 창립 세일 때 프로모션 코드 광고를 다 하고 있다”며 “국내 쇼핑사이트에 이런 식으로 영업하는 곳은 어디도 없다”고 설명했다.

게임이 취미인 20대 이모 씨는 오랜 전자기기 ‘해외 직구족’이다. 작년까진 미국 전자제품 판매몰인 뉴에그, 11마존 핫딜(11번가와 제휴한 아마존 직구) 등을 주로 이용했다. 작년부터는 알리에서 PC 부품, IT 주변기기를 사고 있다. 저가, 질 낮은 ‘중국산’을 생각해선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인텔과 AMD의 정품 CPU, 삼성과 하이닉스 RAM 등 PC 부품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씨는 “AMD CPU인 7800x3d를 국내 판매가 보다 10만원 이상 저렴한 40만원대에 샀다”며 “정품처럼 RMA(반품 서비스)를 받을 수 없긴 하지만 CPU는 웬만하면 고장 날 일이 없다”며 “중국산 제품도 아닌데, 이렇게 알리에서만 싸게 팔 수 있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테무도 이용하고 있다. ‘13만원 쿠폰’을 받으면 10여개의 키보드와 마우스 등 PC 주변기기를 ‘거저’다 싶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쿠팡에서 사고 싶은 물품을 검색해보고, 알리와 테무에 복붙을 한 뒤 검색해보는 게 요즘 쇼핑 패턴”이라고 소개했다. 이 씨는 알리 할인에도 유튜버 프로모션 코드를 활용, 게이머들 사이에서 ‘종결 급 마우스’로 불리는 ‘레이저 Death Adder V3 Pro’를 정가(23만원) 대비 거의 반값에 구매했다. 이 씨는 알리·테무 이용이 “진실을 마주하는 '빨간약'을 먹은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직 품질 못 믿어 "완제품만 산다"는 소비자도

물론 아직 알리를 주된 온라인 쇼핑 처로 삼긴 부족하다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꾸준히 제기되는 ‘품질 이슈’ 때문이다. 김모 씨(40)는 “테무 광고에 낚이다시피 해 1만원대 키보드를 배송받았는데, 화학제품 특유의 냄새가 났다”며 “다시는 테무에서 저가 제품을 사진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30대 기모 씨는 아기 장난감, 기저귀 수납용 트롤리, 모빌 등을 알리를 이용해 샀다. 품질 이슈가 있다 보니 신체 접촉하는 장난감보다는 단순하게 쳐다보는 제품을 구매했다는 설명이다.

국내 쇼핑몰에 대비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다. 그는 “제품 소개 사진과 실제 물품 색상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반품 절차가 귀찮아서 웬만하면 버렸다 셈 치거나 그냥 사용한다”고 했다. 윤모 씨(33)는 “수납장, 화장품 파우치, 아이패드 케이스, 무선 블루투스 마우스를 알리를 통해 샀는데, 품질이 기대 이하였다”며 “식품이나 화장품은 절대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런 ‘품질 이슈’를 우회하는 방법도 공유된다. 알리를 애용하는 국내 직구족이 워낙 많다 보니, 검증된 상품을 알려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유튜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려진 ‘알리 발 꿀템’들도 많다. 샤오미 로봇청소기, 유그린 충전기 및 충전용 선, 에이고 PC 주변 용품 등이 대표적 예다. 또 다른 ‘대륙의 실수 템’으로 꼽히는 레노보 P시리즈 패드를 10만원에 구매했다는 김모 씨 “친절하게 제품을 ‘리뷰’까지 해주는 유튜버가 많다”며 “광고인 걸 알고 있지만, 사용기가 워낙 많다 보니 구매했고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인 구매 효능감 "국내 쇼핑몰 못 따라와"

소비자들은 알리·테무를 이용하면 ‘쇼핑의 효능감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알리의 1000원 마켓, 테무의 13만원 쿠폰 등을 활용하면 이들은 ‘땅 파서 장사하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싼 가격에 생필품을 구할 수 있어서다. 한 번쯤은 ‘버려도 상관없다’는 맘으로 한번 구매해볼 만하고, 이는 국내 쇼핑몰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다는 것.

40대 이모 씨는 “테무에서 옷걸이 10개 500원, 슬리퍼 한 켤레 500원, 혀 클리너 한 개 500원짜리라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반문했다. 그는 “900원짜리 C타입 충전용 선 및 충전기, 3000원짜리 pc용 쿨러,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 침대용 조명 등 10가지 제품을 사는데 총 3만원을 지출했고 설명 배송일을 기대 중”이라고 했다. 20여년 전 지마켓, 옥션에서 MP3플레이어를 샀고, 10여년 전부터는 쿠팡을 애용했다는 그는 “알리·테무를 이용한 건, 마치 매트릭스 네오가 빨간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정희원/안정훈/박시온/김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