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ESG 펀드…'무늬만 ESG' '상장폐지' 속속 등장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열풍이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칠치면서 미국에서는 '안티 ESG 펀드'까지 등장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ESG 펀드가 상장폐지되거나 죄악주 투자를 확대하는 펀드가 나타나고 있다.

5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국내 주식형 ESG 펀드 가운데 설정액이 가장 많이 증가한 상품은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트러스톤ESG지배구조레벨업증권자투자신탁'이다. 이 기간 펀드 설정액이 139억원 늘었다. ESG를 표방하는 이 펀드는 술의 원료인 '주정'을 생산하는 한국알콜을 7.22% 편입한다.

KCGI자산운용의 'KCGIESG동반성장증권자투자신탁' 역시 KT&G를 4.34% 보유했다. 담배 사업이 주인 KT&G는 술에 투자하는 종목과 함께 대표적인 죄악주로 꼽힌다. 한화자산운용의 'ARIRANG ESG우수기업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해 11월 상장폐지됐다. 신탁 원본액이 감소한 데 따른 운용사의 요청에서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펀드 명칭에 'ESG'를 포함하거나 투자설명서에 ESG 관련 내용이 기재된 펀드는 증권신고서에 투자 목표를 명확히 기재하도록 했지만 편입 종목에 명확한 기준은 없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역시 "ESG 지표가 개선될 수 있거나, ESG 지표가 양호한 기업에 투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SG 펀드가 상장폐지되거나 죄악주 투자를 늘리는 '무늬만 ESG' 펀드가 된 데에는 저조한 수익률이 자리한다. 4일 기준 국내 주식형 ESG 펀드 54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0.76%에 불과하다. 장기 성과인 3년 수익률을 놓고 봐도 마이너스(-6.29%)다. 국내 주식형 ESG 펀드 설정액 역시 1년새 2239억원 감소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안티 ESG'가 진행 중이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ESG 펀드에서 50억달러가 순유출됐다. 미국 자산운용사 스트라이브에셋메니지먼트는 ESG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펀드를 내놓기도 했다. 최대 ESG 펀드를 운영하는 블랙록 역시 ESG 기준을 완화해 기술주에 집중 투자했다.

다만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주주환원 흐름이 ESG 펀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주주행동주의가 확산하고 정책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이 강조되는 최근의 분위기는 운용사가 투자 시계를 더 길게 가져가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효 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