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서 떼쓴다고 주택 되나?"…벌금 폭탄 '생숙'이 뭐길래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생활 숙박시설이다. 과거 ‘비주택‘이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받지 않아 주목받던 투자상품이 부동산 시장 침체와 함께 갖고 있기도, 그렇다고 처리하기도 힘든 애물단지가 됐다.

정부는 법에 명시된 대로 숙박시설로 사용하지 않는 생활 숙박시설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수분양자들은 ‘시공사의 사기 분양’ ‘정부의 관리 실패’ 등을 주장하며 준주택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활형숙박시설 관계자들이 이행강제금 부과 유예만료를 한달 앞둔 지난해 9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앞에서 '이행강제금 부과 예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생활형숙박시설 관계자들이 이행강제금 부과 유예만료를 한달 앞둔 지난해 9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앞에서 '이행강제금 부과 예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시작된 갈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총선을 앞둔 정부가 만에 하나 입장을 바꾼다면 지금이 투자 적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예견된 혼란”… 태생적 변종상품

생활 숙박시설,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은 일반인들 입장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정책적 필요와 정치적 환경 등에 따라 생겨난 ‘변종’이어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스탠스가 바뀌면서 구조는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뭉쳐서 떼쓴다고 주택 되나?"…벌금 폭탄 '생숙'이 뭐길래
우선 생활 숙박시설은 다른 두 상품과 달리 단 한 번도 주택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종부세 양도세 취득세 등 각종 중과세에 대한 부담이 없고 어디에 살든, 세대주든 세대원이든 집이 몇 채 있든 이른바 아무나 청약을 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이 활황이던 2021년 전후로 이 같은 점이 과장되게 홍보되면서 분양이 물밀듯 이뤄졌고 사람들도 ‘묻지마 투자’로 응답했다.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자 과거 생활 숙박시설의 장점으로 부각됐던 특징은 단점이 됐다.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전입신고를 할 수 없고 세도 놓을 수 없다.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자 금융권에서 대출 한도를 낮춰 잔금을 치를 수 없게 된 분양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유예만료 9개월 남아… 이행강제금 ‘폭탄’

갈등이 격화된 것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2021년 ‘법대로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면서다. 생활 숙박시설은 숙박업으로 신고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매년 시가표준액의 10%를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하기로 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생활 숙박시설이 집처럼 활용되는 사례들에 대해 거센 비판이 나오자 뒤늦게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초 지난해 10월까지 3년간 계도기간을 줄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올해 말까지 계도기간이 연장됐다. 2025년부터는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뭉쳐서 떼쓴다고 주택 되나?"…벌금 폭탄 '생숙'이 뭐길래
법대로 하겠다는데 왜 분양자들은 되레 큰소리를 치는 것일까. 사정은 이렇다. 국토부는 건축법에 따라 소방시설, 주차 면적 등을 규정한다. 복지부는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숙박시설 운영을 관리한다. 이런 구조에서 지자체는 별생각 없이 생활 숙박시설 거주자도 전입신고를 받아주면서 주거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분양 업체들이란 지적도 많다. 모집공고에는 숙박시설로 명시해 놓고 주거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했다. 건축기준 등 각종 규제는 받지 않으면서 높은 가격도 책정할 수 있다 보니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2020∼2021년 전국적으로 분양된 생활 숙박시설만 약 2만실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현재 사태가 정부 부처 간 규제 사각지대, 건설사의 무책임한 홍보관행, 수분양자들의 묻지마 투자가 합쳐져 나타난 총체적 난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수가 불법 저지르면 합법?… 형평성 논란

원래부터 숙박시설이었던 상품을 ‘떼를 쓴다’고 바꿔주는 게 맞느냐는 비판도 많다. 여론의 시선 역시 그다지 곱지 않다.

생활 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건 원래부터 허용되지 않았다. 부동산 호황기에 개발 이익을 목적으로 투자해 놓고, 가격이 내려가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시행사나 정부에 용도를 변경해달라고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뭉쳐서 떼쓴다고 주택 되나?"…벌금 폭탄 '생숙'이 뭐길래
당시엔 중과세 등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워낙 많다 보니 청약통장 없이도 누구나 분양받을 수 있고, 당첨 즉시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억대 프리미엄이 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실수요자보다는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수요들이 대거 몰렸다.

이들의 주장대로 뒤늦게 용도를 변경해주거나 주거시설로 인정해준다면 안 좋은 선례가 된다. 정당하게 법을 지키며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해서다. 주거시설로 인정해주면 인근 지역 주차난과 과밀학급 문제를 유발해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꾸준히 강조해 온 ‘법치’ 기조와도 어긋난다.

국정감사에서 신랄하게 비판해 이 사태를 촉발한 국회는 인제 와서는 구제책을 마련하라고 한다. 수분양자가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통합서비스(식사·청소 등)’를 결합한 새 주거 형태로 규정하는 것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과 비슷한 수준의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라는 추상적인 기준은 사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총선 전이 마지막 기회. 정부 입장 번복할까

우선 연말까지 시간을 벌어놓은 정부도 답답하다. 당초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국토부는 2021년 유예기간을 주면서 원래 목적대로 숙박업 등록을 하거나 준주택인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분양자 전원 동의 요건이나 상이한 주차장·복도 폭 기준 같은 허들에 가로막혀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을 마친 생활 숙박시설은 전체 10만 가구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 생활 숙박시설 소유주는 “숙박시설로 신고한 사람도 있지만, 정말로 숙박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일단 이행강제금을 피하면서 장기 투숙 형태로 실거주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퇴로를 좀 더 확실히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선 유예기간 연장부터 소급 적용 배제, 준주택 인정 등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주택에 필요한 학교 등 기반 시설 비용 일부는 입주자에게 부담시키되, 이행강제금은 최소화하는 등의 구제책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