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침대에만 누워있는 딸이 엄마에게, "제발, 나를 죽여줘"
8년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등에 욕창이 생기고 똥오줌도 혼자서 가리지 못한다. 음식도 삼키지 못해 멀건 죽만 먹는다. 하루종일 모르핀에 취해 의식도 몽롱하다. 죽음보다도 더 죽음 같은 삶이다.

연극 ‘비(Bea)’는 8년째 침대 생활을 하는 주인공 비어트리스(비)의 안락사 과정을 그린다. 원인 모를 만성 체력 저하증에 걸린 그는 어머니 캐서린과 간병인 레이의 도움 없이 움직이지 못한다. 모르핀의 힘을 빌려 고통 억누르고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낸다.

움직이지 않는 몸과 반대로 비의 의식은 열정적이고 힘이 넘친다. 비의 상상 속 그는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 광란에 빠져 춤을 춘다. 술에 잔뜩 취하기도 하고 섹스도 원한다.

현실은 춤은커녕 혼자 음식도 삼키지 못한다. 옷장을 가득 채운 화려한 드레스와 구두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레이의 도움에도 아무런 성적인 쾌감도 느끼지 못한다. 침대에 감금된 거나 마찬가지인 몸이다. 금이 가 있고 이끼가 핀 그녀의 방 벽이 낡은 감옥을 연상케 한다.

비는 죽음을 원한다. 레이를 통해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엄마에게 전하지만 캐서린은 거부한다. 생명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은 딸과의 이별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안락사를 공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런 캐서린을 향해 비는 '마음의 맹인'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원하는 자신에게 삶을 이야기하는 엄마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자폐증 환자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비의 안락사 요구를 받아들인 캐서린은 자신의 딸의 입에 약과 모르핀을 손수 떠먹여 준다. 수백개의 약을 삼키면서 힘들어하는 딸에게 '할 수 있다'며 응원하는 어머니의 고통이 객석으로 밀려든다.
8년째 침대에만 누워있는 딸이 엄마에게, "제발, 나를 죽여줘"
비는 죽음을 통해 해방된다. 작품 내내 비를 둘러싸던 방벽이 그녀가 죽으면서 사라진다. 그 자리에 꽃이 만개한 푸른 정원과 어린 시절 오르던 나무가 나타난다. 자유로워진 비는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춘다. 삶의 순간보다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다. 정원을 누비는 비의 환호성과 캐서린의 절규가 겹치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비극적인 죽음을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 관객의 마음을 복잡하게 뒤흔든다.

안락사 과정에서 느끼는 비의 격동적인 심리 묘사가 두드러진다. 열정으로 가득한 비의 내면은 침대 위를 방방 뛰며 환희에 빠진 몸짓으로 그려진다. 반대로 힘 없는 몸에 갇힌 분노와 답답함, 성욕까지 거침없는 언어로 표현된다. 일부 거친 대사와 연출이 개연성이 부족해 과하게 느껴진 점은 아쉽지만 비의 감정이 날 것 그대로 전달돼 인상적이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맹인’이라는 메시지가 신선한 작품. 아름답게 꾸며진 무대에 숨겨진 의미를 고민하면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공연은 LG아트센터에서 3월24일까지.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