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갖춘 가스라이팅이 어떤 파국 초래하는지 생생히 보여줘
안 먹어도 살 수 있단 선생님 말씀, 진짜일까…영화 '클럽 제로'
압둘라티프 케시시 감독이 연출한 프랑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의 주인공 아델과 엠마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다름'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다.

이들의 계층과 환경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음식이다.

엠마의 가족은 신선한 생굴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즐긴다.

반면 아델네는 식탁 정중앙에 토마토 파스타를 솥째 놓고 퍼먹는다.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영화 '클럽 제로'에 나오는 영국 명문 고등학교 학생들도 비슷하다.

이들이 먹는 음식을 통해 관객들은 그들이 속한 계급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가 해준 비건식,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초밥, 상주 요리사가 만든 디저트를 먹는 아이들이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을 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장학금을 받아 학교에 다니는 소년 벤은 불량식품을 입에 달고 산다.

잘 먹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거라며 그의 어머니가 챙겨주는 간식은 설탕 덩어리나 다름없는 싸구려 쿠키다.

그런데 이 학교에 신임 교사 노백(미아 바시코브스카 분)이 온 다음부터 학생들의 음식에 따른 계급의 지형도가 흔들린다.

노백이 영양 수업에서 '의식하며 먹기'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다.

안 먹어도 살 수 있단 선생님 말씀, 진짜일까…영화 '클럽 제로'
식탁에 앉아 길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이 식사법은 시작된다.

환경 보호, 다이어트, 자기 통제, 스트레스 관리, 학점 등 다양한 이유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노백의 지도를 잘 따른다.

하지만 그가 두 번째 단계로 한 가지 음식만 먹기를 제안하자 일부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수업을 이탈한다.

끝까지 남은 아이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노백을 맹신한다.

심지어 인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믿는다.

이때부터 음식에 따른 계급 차이는 사라진다.

아이들 모두가 공평하게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논리를 갖춘 가스라이팅이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들과 다르게 '클럽 제로' 속 학생들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들이다.

뒤에는 학교를 쥐락펴락할 만큼 영향력 있는 부자 부모까지 있다.

그런데도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지듯이 서서히 잘못된 신념을 굳혀간다.

안 먹어도 살 수 있단 선생님 말씀, 진짜일까…영화 '클럽 제로'
피 한 방울, 폭력 한번 없이도 극이 전개될수록 기괴한 분위기는 강해진다.

특히 후반부에는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긴장감과 미스터리가 커진다.

결말은 관객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듯하다.

노백 역을 맡은 바시코브시카의 사이비 교주 같은 연기는 기이함을 배가한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2013)를 비롯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제인 에어'(2011), '크림슨 피크'(2015) 등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그는 이번에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훌륭히 완성해냈다.

동양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의 음악과 하우스너 감독의 특기인 과감한 색 사용도 영화의 '사이코스러움'에 일조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난해한 스토리 때문에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당시에도 평단으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들었다.

오는 24일 개봉.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안 먹어도 살 수 있단 선생님 말씀, 진짜일까…영화 '클럽 제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