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단 관객 늘었지만 2019년의 절반 수준
외국 애니 흥행 돌풍…성수기 노린 한국 대작들 쓴맛
윤정희·변희봉·김수용 등 거목들 별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잔뜩 위축됐던 극장가가 올해는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극장을 찾은 관객 수가 지난해보다 소폭 늘어난 데 그쳤고,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극장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위기감은 더 커졌다.

올해 극장가에선 외국 애니메이션의 약진 등 새로운 흐름도 눈에 띄었다.

한국 영화 대작들은 출혈 경쟁을 하다가 줄줄이 쓴맛을 봤다.

침체에 빠진 극장가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새 흐름에도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만큼 영화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023 영화계] 팬데믹 충격 못 벗어난 극장가
◇ 극장 찾은 관객 작년보다 소폭 증가
9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7일까지 극장을 찾은 누적 관객 수는 1억1천169만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한 해 누적 관객 수는 1억1천280만명이었다.

연말까지 20여일 남은 만큼 올해 누적 관객 수는 작년보다 소폭 증가한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봄'이 흥행 중인 데다 이달 20일에는 또 한 편의 기대작 '노량: 죽음의 바다'도 개봉하기 때문에 격차는 좀 더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누적 관객 수(2억2천667만명)와 비교하면 올해는 겨우 절반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팬데믹 이후 극장가는 회복세에 있지만, 문제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라며 "내년에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만 놓고 보면 올해 관객 수는 작년보다 줄어드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올해 7월 중순∼8월 중순에 해당하는 4주간(30∼33번째 주) 관객 수는 1천272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천458만명)보다 13%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갔는데도 극장가가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영화 관람료 인상으로 극장의 문턱이 높아져 관객의 입맛이 그만큼 까다로워진 데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급속한 성장으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유인도 약해졌다.

영화가 개봉해도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서 볼 수 있는데 굳이 극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관객이 많아진 것이다.

OTT는 오리지널 영화도 공세적으로 내놓으면서 극장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극장이 침체를 못 벗어날 경우 한국 영화산업의 수익이 줄어들고, 이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경쟁력 있는 영화를 못 내놓는 악순환 구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3 영화계] 팬데믹 충격 못 벗어난 극장가
◇ 외국 애니 약진…힘 못 쓴 한국 대작들
올해 극장가에선 새로운 트렌드도 눈에 띄었다.

먼저 주목할 만한 건 외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약진이다.

1월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76만명이 관람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3월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바통을 이어받아 557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6월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누적 관객 수 723만명을 기록했다.

해외에선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둔 작품이어서 국내에서의 흥행이 더욱 주목받았다.

한국 영화 대작들은 올해 5월 개봉해 천만 영화에 등극한 '범죄도시 3'(누적 관객 수 1천68만명), 7월 개봉한 '밀수'(514만명), 현재 흥행 중인 '서울의 봄' 등을 빼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여름 성수기에 맞춰 개봉한 '비공식작전'(105만명)과 '더 문'(51만명)은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추석 연휴 대목을 노린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191만명), '1947 보스톤'(102만명), '거미집'(31만명)도 손익분기점을 못 넘은 채 극장을 떠나야 했다.

대작들이 한꺼번에 개봉하면서 빚어진 출혈 경쟁도 문제라는 지적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중·저예산 영화들도 있었다.

대작들이 쓴맛을 본 추석 연휴 끝자락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30일'은 상당 기간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216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9월 개봉한 공포영화 '잠'도 신인 감독의 데뷔작인데도 147만명이 관람해 주목받았다.

'달짝지근해: 7510'(138만명)은 손익분기점엔 조금 못 미쳤지만, 여름 성수기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중·저예산 영화라도 작품성을 갖추고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얼마든지 흥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가운데 손익 관점에서 남는 장사를 한 건 '범죄도시 3', '밀수', '잠', '30일', '서울의 봄' 등으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외국 영화 중에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 3'(420만명),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1'(402만명), '오펜하이머'(323만명) 등이 흥행했다.

[2023 영화계] 팬데믹 충격 못 벗어난 극장가
◇ 해외 수상 소식도 뜸했던 한 해…윤정희·변희봉·김수용 별세
지난해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받고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인의 수상 소식이 희망을 줬지만, 올해는 그런 희소식을 듣기 어려웠다.

지난 5월 제76회 칸 영화제엔 한국 영화 일곱 편이 초청됐지만, 상을 주는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은 없었다.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인사 잡음에 따른 논란으로 집행위원장과 이사장이 사퇴하는 등 파행을 겪으면서 영화인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다행히 영화제는 무사히 치러졌지만, 논란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한국 영화의 거목들도 우리 곁을 떠났다.

문희, 남정임과 함께 '트로이카'로 꼽힌 1960∼1980년대 톱스타 배우 윤정희는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9월엔 '괴물'(2006)을 비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변희봉이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히트작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를 비롯해 숱한 명작을 남긴 김수용 감독도 최근 유명을 달리했다.

이 밖에도 '엄마 없는 하늘 아래'(1977)의 이원세 감독이 숨을 거뒀고, 1960년대를 풍미한 배우 김석훈, '타짜'(2006)의 너구리 역으로 인기를 끈 조상건도 별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