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이 7개월여 만에 하락세로 전환하는 등 강남권 부동산 매수심리가 한풀 꺾였다. 최근 한 달 새 거래량이 급감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임대철 기자
고금리와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이 7개월여 만에 하락세로 전환하는 등 강남권 부동산 매수심리가 한풀 꺾였다. 최근 한 달 새 거래량이 급감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임대철 기자
“몇 달 전만 해도 매수 문의가 한 달 20여 건 들어왔는데 최근엔 뚝 끊겼습니다. 원래보다 2억원 낮춰 급매로 내놔도 거래가 쉽지 않습니다.”(서울 강남구 A공인 관계자)

고금리와 대출 규제, 경기 침체, 집값 급반등 피로감 등이 겹치며 서울 강남권 아파트마저 팔리지 않고 매물이 쌓이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거래 가뭄’ 속에 가격이 조정되기 시작하면서 강남구와 서초구 아파트값은 7개월여 만에 상승 랠리를 멈췄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매매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개포동 전용 84㎡ 두달 새 3억원 하락

개포동 아파트 3억 뚝…"상승호재 없다" vs "공급절벽이 가격 지탱"
2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전용면적 84㎡는 이달 27억원에 팔렸다. 지난 9월(29억9000만원)과 비교해 두 달 새 3억원가량 떨어졌다. 서초구 방배동 방배현대홈타운1차 전용 59㎡는 7월 14억8000만원에서 이달 13억1000만원으로 1억7000만원 빠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20일 기준) 강남구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2% 하락했고, 서초구는 보합(0%)을 유지했다.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강남권에서도 압구정 등의 재건축 호재 단지는 투자 수요가 있어 가격이 여전히 오르고 있다”면서도 “비교적 실거주 수요가 많은 송파구나 강남구 개포·도곡동 일대 대단지 아파트에서 호가가 내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권 아파트값은 올해 2~3분기에 빠르게 회복해 거의 전고점 수준에 다다랐다. 금리와 경기 여건이 악화해 거래가 끊기고 가격이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9510가구 규모 대단지여서 거래가 빈번하던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인근 공인중개소도 최근 썰렁하다. 9월 거래량은 27건이었는데, 지난달엔 11건으로 60% 감소했다. 이달 들어 신고된 거래는 한 건도 없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구로구 등 서울 외곽도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도봉구 창동 ‘북한산아이파크5차’ 전용 101㎡는 9월 10억원에서 지난달 9억4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영끌족’의 투자 수요가 몰린 노도강의 경우 대출 의존도가 높았다. 9월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판매가 중단되고 최근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어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인천도 집값이 3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5대 광역시도 지난주 0.01%에서 이번주 -0.02%로 방향을 바꿨다.

○보합이냐 vs 2차 하락이냐

강남권은 ‘집값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내년 상반기까진 조정 국면이 전국으로 확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 속에 지난달부터 거래가 급감한 데다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을 끌어올릴 호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물은 석 달 전(46만8637건)보다 12% 늘어난 52만4502건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거래가 잠겼다는 얘기다. 백광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국내 아파트 가격이 장기적으로 현재 대비 최대 30%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급격한 가격 조정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세시장이 강세를 띠고 있는 데다 내년 ‘공급절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최근 전셋값은 강세를 띠고 있어 매매가격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도 “내년 서울 입주 물량이 급감하는 만큼 전셋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며 “내년 금리와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2분기부터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인혁/김소현/한명현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