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이후 DL이앤씨 8번째 사망자 故 강보경씨 어머니·누나 인터뷰
"매일 전화해 '사랑한다'던 아들…대통령 지시면 다들 정신 안 차리겠나"
"공사장 추락사한 스물아홉 내아들…자식 잃는 아픔 더는 안돼"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사고입니다.

자식을 잃는 부모가 또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DL이앤씨(옛 대림산업) 본사 앞에서 만난 이숙련(70)씨가 'e-편한세상 DL그룹은 내 아들 살려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 8월 11일 부산의 한 아파트 재개발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노동자 고(故) 강보경(29)씨의 어머니다.

11일은 강씨가 목숨을 잃은 지 3개월째 되는 날이다.

패딩점퍼 안에 검은 상복을 받쳐 입은 백발의 이씨는 "이러다 얼어 죽으면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보러 올지도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날 서울의 아침 체감온도는 영하 3도까지 떨어졌다.

이씨와 그의 딸이자 고인의 누나 지선(33)씨는 지난달 4일부터 39일째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매일 세 번씩 이곳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강씨의 분향소도 이곳에 설치됐다.

하도급업체 KCC 소속 일용직이었던 강씨는 지난 8월 11일 오전 10시께 부산 연제구 DL이앤씨 아파트 6층에서 창호를 교체하다 2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는 강씨를 포함해 모두 8명이 숨졌다.

지난 8월말 고용노동부가 DL이앤씨를 압수수색했는데 현재까지 기소된 사람은 없다.

이씨는 자세한 사고 경위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언론 보도를 꿰맞춰 알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이튿날에는 사고 현장을 방문했으나 현장 관리자가 막아섰다.

겨우 들어간 사고 현장과 같은 층 다른 호수에서는 안전벨트를 걸 고리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유족은 안전모를 보여 달라고도 요청했지만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피해자와 유족분들께 깊은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도 "사고 당일 창호 교체 작업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해명했다.

이 회장도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외국 출장을 사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강씨의 누나는 "회사가 오만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빈소를 찾은 회사 관계자들이 사과 없이 합의서를 들이밀기만 바빴다"며 "짝다리를 짚고 친척들의 직업을 묻는 회사 관계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공사장 추락사한 스물아홉 내아들…자식 잃는 아픔 더는 안돼"
유족은 강씨를 자상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들이자 동생으로 기억했다.

고인은 경남 김해에서 나노공학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던 중 일을 하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

이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를 걸어서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고 마지막에는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던 아들이었다"며 "지금도 전화벨만 울리면 혹시 아들한테 전화가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가슴 아파했다.

누나는 "동생의 꿈은 집을 장만하고 어머니를 모시는 것 하나였다"며 "어머니가 곧 녹내장 수술도 앞두고 있는데 본인이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모아놔야겠다는 생각에 공사 현장에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생일잔치 한번 제대로 못 해준 게 마음에 남는다.

그런데 이제 제사를 챙기게 됐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공사장 추락사한 스물아홉 내아들…자식 잃는 아픔 더는 안돼"
'자식 잃은 어미'에 대한 시민의 공감과 지지는 유족이 3개월 동안 버틸 수 있게 한 힘이다.

"(1인 시위를 하는데) 어떤 아버님이 지나가다가 펑펑 울면서 어머니께 식사라도 하라고 지폐를 쥐여주시더라고요.

자신도 아들을 먼저 보냈다면서 '같은 마음 아니겠냐. 힘내라'고 말씀해주신 어머님도 계셨고요.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인데 고맙죠."
이날 1인 시위에는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도 함께했다.

김 대표의 아들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졌다.

강씨의 누나는 "(어머니와 김 대표가 만나면) 아들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곤 한다"고 전했다.

그는 "동생이 죽고 3개월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생각하면 참담하다"고 했다.

인터뷰 전날에도 제주 서귀포시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씨는 "제발 자식 잃은 아픔이 또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잘못한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도록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다면 다들 정신을 안 차리겠느냐. 아무것도 안 하면 귀중한 목숨이 계속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이라고 호소했다.

강씨의 누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도 동생 영정 앞에 잘못했다고 말 한마디 안 하고 있잖아요.

제대로 사죄하는 사람도, 처벌받은 사람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동생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