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연봉계약서 실화냐?…"서명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이 글은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의 자문 아래 작성됐습니다.

지난해 자신이 생각해도 성과가 좋지 않았던 A과장. 하지만 그 전의 수년간 우수한 성과를 냈기에 올해 연봉 계약에선 "최소한 동결 정도는 해주겠지"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봉계약서를 조회했지만, 결과는 대폭 삭감이었다. 화가 난 A 과장은 '연봉계약서'라는 문구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지하는 게 무슨 연봉계약이지?" 결국 A 과장은 마음을 모질게 먹고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연봉제는 근로자의 성과를 기초로 연 단위로 임금을 결정하는 임금체계를 말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는 연봉제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아예 연봉제의 정확한 요건, 연봉 결정방법, 효과 등에 대해서는 판례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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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연봉계약서에 근로자가 서명을 거부하는 경우 어떻게 될까. 특히 연봉이 삭감됐을 경우를 위주로 살펴보자.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부터 보자. 고용부는 “인사고과나 근무평정은 사용자의 고유한 인사경영 활동으로, 그 (연봉) 결정 기준을 취업규칙에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서 산정한 연봉의) 결과가 곧바로 근로계약을 대신하는 효력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근로기준팀-973, 2005. 11. 4.). 이어 "취업규칙에 정해진 인사평가 규정에 따라 연봉산정 결과를 기계적으로 도출했다고 하더라도, 이게 곧바로 근로계약을 대신하는 효력을 가지거나 근로계약(연봉계약)의 내용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론적인 해석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회사의 연봉제 규정이나 인사고과에 따라 개인별 연봉이 결정됐다고 해도 근로자와 별도 계약으로 체결하지 않는 이상 곧바로 연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근로자가 계약서 서명을 거부할 경우 사용자는 일방적으로 변경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경우엔 '계속적 거래관계' 법리에 따라 전년도 연봉과 동일한 조건으로 연봉계약이 존속하는 것으로 보는 게 실무상 통설이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 따르면 연봉제가 실제로 기능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

연봉제는 △실제로 연봉협상을 통해 연봉이 결정되는 경우 △내부규정에 따라 연봉이 자동 산출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엔 어느 일방의 의사만으로 연봉 변경(연봉 감소 등)의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 근로자의 사인을 받던가, 아니면 앞서 언급된 계속적 거래관계 법리에 따라 최소한 이전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 경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삭감액을 지급하면 '임금체불' 논란을 빚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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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자, 즉 연봉계약이 실질적으로는 내부 규정에 따라 자동 산출되고 연봉계약도 실제로는 회사가 결정된 연봉을 통지하고 이를 수령했음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 경우엔 직원이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결정된 연봉을 근로조건에 편입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대법원은, 실적에 따라 연봉을 최대 25% 삭감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 A 회사에서 근무하던 두 근로자가 "마이너스 연봉제 규정이 무효"라며 감액된 연봉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특히 대법원은 인사 평가가 적절히 이뤄져 연봉이 결정된 것이라면, 연봉 결정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해 눈길을 끌었다(2015다25676). 서울중앙지법도 유사한 법리로 판결을 한 바 있다(2013가합505107).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인사평가를 통해 (성과평가) 등급이 결정되고 그 등급에 따라 취업규칙에 미리 정해 놓은 임금 상승률 또는 하락률이 기계적·산술적으로 적용되는 연봉제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연봉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임금 지급이 적법하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판례"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판결의 핵심은 인사평가가 객관적이고 적정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연봉계약서 서명을 거부했다고 징계를 할 수 있을까. 황은오 노무법인 인율 대표 노무사는 "연봉계약서 서명 거부 자체만을 이유로 징계는 할 수 없다"며 "다만 연봉 감액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업무를 태만히 하는 경우엔 징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