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 폭력진압 뒤 히잡 단속 등 탄압 오히려 강화
노벨평화상, 이란 히잡시위 재조명…국제사회 압박 커질 듯
202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이란의 대표적 여성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가 선정되면서 1년여 전 이란의 극심한 여성 인권 억압의 실상을 전 세계에 보여준 '히잡 시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모하마디의 이번 수상을 계기로 히잡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탄압 정책을 지속하는 이란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벨평화상, 이란 히잡시위 재조명…국제사회 압박 커질 듯
히잡 시위의 발단은 지난해 9월 13일 당시 스물두살이던 쿠르드계 이란인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였다.

그는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에 체포됐다.

지도 순찰대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단속하는 조직이다.

아미니는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흘 뒤인 16일 숨졌다.

유족은 아미니의 머리와 팔다리에 구타 흔적이 있다며 경찰의 고문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부인에도 아미니가 숨진 다음 날인 17일 그의 장례식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이내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전국에서 그의 의문사에 항의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노벨평화상, 이란 히잡시위 재조명…국제사회 압박 커질 듯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여성, 생명, 자유'라는 구호와 함께 검은색 히잡을 벗어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들어선 근본주의 이슬람 정권의 극심한 인권 탄압으로 광범위한 불만이 쌓여 왔다.

특히 여성의 경우 히잡 착용 의무화, 여성 스포츠 관람 금지 등으로 상징되는 종교적 억압 정책의 집중 표적이 됐다.

게다가 이란 핵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와 작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경제 사정마저 급속히 악화하면서 부글거리던 민심이 아미니의 사망을 계기로 폭발했다.

전국을 뒤덮은 시위대는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우며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에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서방 세력이 조장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군경은 시위대 상대로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둘렀고,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인권 단체들은 미성년자 71명을 포함해 500명 이상이 군경의 유혈 진압으로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으며, 2만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란 당국은 더 나아가 군경 살해 혐의 등으로 시위대 7명을 사형에 처하며 시위를 찍어눌렀다.

이 같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직접적인 시위 사태는 약 석 달여 만에 가라앉았고, 이란 정부는 최근 히잡 단속을 다시 강화하는 등 고삐를 조이고 있다.

지도 순찰대가 지난 7월 활동을 재개하고 히잡 미착용 처벌 강화와 인공지능(AI) 단속 시스템 설치까지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아미니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추모 행사를 막기 위해 그의 부친을 체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달 아미니 사망 1주기를 기리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등 이란의 민심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난 1일 테헤란 지하철에서 아르미타 가라완드(16)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가 지도 순찰대에 폭행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번 노벨 평화상 선정이 이란 여성 인권 투쟁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엘리자베스 트로셀 대변인은 "우리는 보복과 위협, 폭력과 구금에 맞선 이란 여성들의 용감함과 결단을 보아 왔다"며 모하마디의 이번 수상이 이들의 용기를 부각했다고 강조했다.

트로셀 대변인은 히잡 시위와 관련해 "이란 여성들은 그들이 입었거나 입지 않은 복장 때문에 괴롭힘을 당해 왔다"며 "그들은 세계에 영감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이번 수상으로 히잡 시위에서 나타난 이란 여성들의 인권 투쟁이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