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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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금을 청구할 때 번거로운 종이 서류 발급 과정을 없애고 진료받은 병원에서 신청하기만 하면 전산으로 처리하는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제도가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된다. '개인정보보호'를 명분으로 14년째 관련법 통과를 반대해 온 의료계는 다시 법사위 워원들을 개별로 만나면서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12일 의료계와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법사위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실손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정부 측에선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출석해 법안 내용을 설명할 계획이다.

실손청구 간소화는 보험 가입자가 병·의원에서 진료·결제 후 현장에서 신청하면 병·의원이 진단서와 영수증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문서로 중간 정보처리 기관에 보내고, 기관은 이를 다시 보험사에 보내도록 해 편의성을 높이는 제도다. 가운데 정보처리 기구를 둔 것은 10만여 의료기관과 40여 곳 보험사가 일일이 전산망을 구축하는 비효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재는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보험 가입자가 먼저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문의해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또 병·의원에선 종이로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서류를 팩스나 애플리케이션으로 보내야 신청이 완료된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소액 보험금을 신청하지 않는 사례도 다수 발생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2022년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 추정치는 연평균 2535억원에 달한다.

실손청구 간소화로 이런 '눈먼 돈'이 제 주인을 찾게되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 현행 제도상 서류 등 데이터 관리를 전산화한다는 부분 외엔 별다른 이득이 없다. 그럼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정부의 '전자정부 실현'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간소화·전산화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다.

실손청구 간소화는 소비자 편의성 증진이라는 당위성을 갖춘데다 의료계가 제기한 우려 부분을 대부분 해소한 덕분에 지난 6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제 법사위와 본회의 의결이 남은 상황이다.

의료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간소화 제도 도입 이후 병·의원이 중개 기관에 전송하는 정보는 현재 종이 서류로 받는 내용과 같기 때문에 간소화로 개인정보가 더 많이 유출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라고 정부 측은 설명한다.

일각에선 의료계가 실제로 우려하는 부분은 병·의원 운영 정보가 특정 기관에 축적되면 향후 의료비 인하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 정보처리 기관을 보험개발원으로 지정하고, 보험개발원이 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보완책을 추가했다.

시민단체들도 실손청구 간소화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뉜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실손보험금 청구가 쉬워지면 실손 가입자가 더 늘어나고, 이 때문에 민영의료가 공공의료를 넘어서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나는데도 간소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내세운다.

하지만 이미 실손보험 가입자가 3997만명(작년말 기준)에 달해 국민건강보험 보완 수단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실손청구를 간소화한다고 의료 민영화가 가속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손청구 간소화를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보험업법 개정은 국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민생법안이자 국민 불편을 야기하는 불합리한 제도들을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종이서류를 전자문서로 바꾼다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커진다거나 보험사가 다른 보험금 지급을 회피할 것이라는 등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