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칼럼] "AI 교실 더 늘려주세요"
경기 이천에 있는 다원학교는 지난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SW) 교실을 열었다. 재학 중인 200여 명의 특수장애 학생 중 수업이 가능한 11명을 뽑아 5명과 6명으로 나눠 AI와 코딩의 기본 개념, 이를 활용한 로봇 조작 방법 등을 가르쳤다. 신유나 학생(10)은 수업 내내 ‘듣는 둥 마는 둥’ 산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수업 후 매번 교육 내용을 넘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강사들을 놀라게 했다. 수업을 준비한 김영교 교사는 “AI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게 너무 감동스럽다”며 “이런 교실을 더 많이 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AI 열풍은 비단 다원학교뿐이 아니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 주관한 ‘디지털 새싹’(디싹) 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한 학교들은 예외 없이 교실을 더 열어달라고 아우성이다. 디싹 교실은 2025년 초·중·고교 AI 교육 전면 도입에 앞서 지난해 말부터 시범사업 중인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이다. 디싹 교실 운영기관인 한국경제신문사와 KT도 가을 학기 중 경기 지역 20여 개 학교에서 1500명을 대상으로 교실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9월 초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오픈런이 발생해 조기 마감해야 했다. 44개 학교에서 3600여 명을 교육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예산과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강의 요청은 쇄도해 애를 먹고 있다.

디싹 교실의 인기는 여간 고무적인 게 아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AI 전쟁 중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은 민간 기업들이 거의 맨몸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말 미국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구글의 ‘바드’, 인플렉션AI의 ‘파이’, 메타의 ‘심리스M4T’, 중국의 ‘훈위안’ 등 새로운 AI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다. 한국에선 네이버가 최근 ‘하이퍼클로버X’ 출시로 겨우 체면치레했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올해 발표한 ‘AI 인덱스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AI 투자 규모는 세계 투자금의 1.6%에 불과했다. 중국(44.2%), 미국(25.3%), 영국(5.0%) 등에 크게 뒤진다. 네이버가 지난 5년간 1조원을 투자할 때, 오픈AI는 10조원 가까이 투자했고 앞으로 수년 내 120조원을 더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에서의 AI 열기는 그나마 기업들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신성장 4.0 전략’의 내용은 담대하다. 세계 3대 AI 강대국 도약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말로만’에 그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모든 정책은 ‘돈’이 말한다. 정부가 2026년까지 AI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예산은 원천기술에 3018억원, AI 반도체 기술에 1조200억원 등이다. 미국, 중국은 수십~수백조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격차가 너무 크다. 아무리 긴축재정이 중요해도 미래 투자에 인색해선 안 된다.

AI 인력 양성을 위한 디싹 교실 예산도 빈약하다. 정부는 올해 디싹 사업에 20만 명 교육 예산으로 686억원을 배정했다. 내년 예산은 30만 명 교육에 1000억원을 요청해놓고 있다. 그것도 국비가 아니라 지방교육청 예산을 헐어서 마련해야 한다. 디싹 담당 부서는 시·도교육청 예산을 따기 위해 다른 부서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국 AI 경쟁력이 뒤처지는 출발점이 이 대목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