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칼럼] 저출산 대책 재탕·삼탕 그만둬야
한국은 기록의 나라다. 남들이 수백 년씩 걸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불과 한 세기도 안 걸려 뚝딱 해치웠다. 늙어가는 것도 세계 최고다. 이웃 일본이 10년 걸려 작성한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이전 기록도 내후년이면 7년으로 경신할 태세다. 이대로라면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 역시 한국 몫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위기에 대한 무감각이다. “한국은 집단적 자살사회 같다”(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IMF 총재) “한국은 2750년이면 국가 소멸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등의 국제사회 경고가 잇따랐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좀 시늉을 하긴 했다. 2005년부터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세우고 17년간 332조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거론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사이 연간 출생아 수는 반토막 났고, 출산율은 세계 꼴찌가 됐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실패한 계획을 짠 사람들이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도 무안한지 요즘은 저출산 사회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민 확대를 얘기한다. 그러나 ‘반만년 한겨레’로 살아온 나라가 갑자기 미국 중국 같은 다민족 국가로 변하기 쉽지 않거니와 한국을 경쟁력 있는 이민 국가로 생각할 외국인이 많을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여성·노인 인구를 더 적극 활용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율이 지금 같은 수준이라면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결국 아이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국가 존립을 위해 필요한 국방과 교육, 나라 재정과 세대 갈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각설하고, 네 가지만 주문하고 싶다. 우선 아이를 낳고 싶어 하거나,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계층에 지원을 아끼지 말자는 것이다. ‘될성부른’ 정책에 대한 집중이다. 그중 하나가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이다. 난임부부 숫자가 26만 명이다. 이들이 낳은 출생아가 2021년 기준 2만1000명, 전체의 8.1%에 달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부터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겼다. 지자체가 돈이 많으니 각자 사정에 맞게 알아서 하라고 떠넘긴 것이다. 벌써부터 지자체별로 지원 내용과 폭이 다르다고 원성이 크다. 정부가 책임지고 모든 난임부부에게 조건 없이 지원하는 게 맞다.

또 아기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부부에게는 ‘아이를 안 낳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무작위 현금 살포를 늘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적 고민으로 출산을 고민한다는 20~30대가 절반 이상이다. 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집중적이고, 감동적인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출산율 하락을 멈추거나 조금이라도 반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저출산 대응을 위해 현장에서 애쓰는 HD현대 같은 모범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격려도 필요하다. 저출산 탈출에 필수인 ‘일과 양육이 병행 가능한 사회’는 이런 기업들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그제 저출산 대책을 강화한다며 ‘범정부’ 인구정책기획단을 출범시켰다. 의욕을 내고 있지만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년 가까이 고만고만한 정책을 재탕·삼탕 우려먹은 관료 중심 조직에서 대통령이 주문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실력 있는 인사들이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독립기구를 만들어 새 판을 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