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칼럼] 거리보다 교실 안전이 더 걱정된다
100만 부 이상 팔린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는 묻지마 칼부림 사건으로 시작한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시작한 치킨집이 망하자 남자는 3년 반 동안 집안에 틀어박힌다. 그의 일기장은 세상을 향한 증오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어느 날 남자는 갑자기 칼을 들고 거리로 나간다. ‘오늘 웃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라는 유서를 써놓고.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흰 눈을 보고 즐거워하는 여자와 할머니, 길 가는 대학생, 경찰 등 5명을 찔러 죽인 후 자살한다.

작품이 발표된 2017년만 해도 묻지마 칼부림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만한 일은 얘깃거리도 되지 못할 만큼 일상이 돼 버렸다. 고교 졸업 후 5년간 집안에 틀어박혔던 정유정(23)은 “살인해보고 싶었다”며 생면부지 과외선생을 111군데나 찔러 살해한 뒤 유기했다. 게임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독돼 반년 이상 두문불출하던 조선(33)은 지하철역에서 게임하듯 시민들을 쫓아다니며 칼을 휘둘렀고, 한때 수학 천재 소리를 들은 최원종(22)은 행인들에게 칼을 휘둘러 1명을 죽이고 13명을 다치게 했다. 인터넷에는 제2, 제3의 조선, 최원종이 되겠다는 이들이 넘친다. 시민들은 사람 많은 곳이, 길거리가, 뒤통수가 무섭다며 대책을 호소한다.

이런 참극의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 정신질환에다 열등감, 사회적 단절, 정부의 대응 부재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꼽힌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대(大)역병의 영향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역병 발생 후 극심한 사회 불안은 필연적이었다. 14세기 세계 인구 4억5000만 명 중 1억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은 유럽 전역을 종말론의 광풍으로 몰고 갔다. 이들은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지목했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유대인 2000명을 산 채로 화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19년 스페인독감 방역 실패로 한반도에서 14만 명이 죽자, 일본의 무단정치와 수탈정책에 반발하는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지난 3년간 세계에서 7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국에서 강력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사회 불안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교실에 미치는 영향이다. 얼마 전 중·고등학교 경제논술신문 ‘생글생글’의 연구교사들과 간담회를 했다. 참석한 교사들의 얘기가 충격적이었다. 한 학교에서는 최근 설문조사를 해보니 자신이 왕따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25명 중 18명이나 됐다. 코로나 이전엔 2~3명에 불과했던 수치다. 다른 학교 상황도 비슷했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 다투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건수가 급증했고, 자퇴생과 자살 건수도 이전보다 많아졌다고 했다. 오랜 비대면수업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 간 신뢰 관계까지 금이 가면서 교육 현장의 안전문제는 시급한 현안이 됐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언제 어디서 제2의 서이초 사건, 충남고 살인미수 사고가 발생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는 이구동성이었다.

정부는 길거리 묻지마 칼부림을 막기 위해 장갑차와 완전무장 경찰특공대를 동원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 도입, 경찰 총기사용 면책요건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 안전을 위한 대책은 없다. 이미 경고음은 충분히 울리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