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게 없는 사람을 챙겨라, 궁지에선 결정을 못하게 하라"[책마을]
막다른 위기에서 펼쳐지는 대담한 선택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미식축구의 '헤일 메리 패스'가 그렇다. 밀리고 있는 팀이 경기 종료 직전 던지는 승부수다. 더 이상 수비는 의미가 없는 상황, 모든 선수가 장거리 송구를 받기 위해 전방으로 돌진하며 일발 역전을 노린다.

야구의 9회 말 역전 만루홈런과 농구의 버저 비터 등. '잃을 것 없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스포츠 경기처럼 감동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막다른 길의 선택들>은 코너에 몰린 사람들의 결단이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끈 사례들을 소개한 책이다. 실제로 헤일 메리 패스의 성공확률은 약 2.5%뿐. 낮은 확률을 뚫고 성공한 몇몇 '기적' 이면에는 대다수의 실패 사례가 감춰져 있다.

저자는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에서 30여년 간 MBA 과정을 지도한 윌리엄 L. 실버 교수다. 그는 주식·채권 등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사회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무모한 공약으로 전세를 뒤집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부터 배수진을 펼치며 포로들을 학살한 히틀러까지 정치·전쟁·비즈니스의 다양한 영역의 '막다른 선택들'을 분석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을 챙겨라, 궁지에선 결정을 못하게 하라"[책마을]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니컬러스 리슨이 일으킨 영국 베어링스 은행 파산 사건이다. 은행의 자기자본을 관리하던 그는 자신의 손실액을 메꾸기 위해 계속 판돈을 늘려 투기를 이어갔다. 결국 일본 닛케이 선물지수에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었지만, 고베 대지진 등 악재가 겹치며 은행의 손실액이 1조 2800억원까지 불어났다.

책은 리슨의 투기가 이성적 선택의 결과였다고 본다. 막다른 상황에서는 성공의 보상이 실패의 대가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리슨의 투자가 성공한다면 그는 그동안의 손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실패한다면 회사를 그만두면 된다. 이미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 최적의 선택은 판돈을 늘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인 셈이다.

이런 '고수익 저위험' 원리는 당사자에겐 유리할지 몰라도, 그 비용은 사회의 다수에게 전가된다. 저자는 "투자자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결과로 발생하는 피해는 큰 비용이 드는 긴급 구제의 형태로 납세자에게 부과된다"고 지적한다.

"잃을 게 있는 상황의 힘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저자는 사회적 재앙을 막기 위해선 잃을 게 없는 사람들한테 '잃을 것'을 제공하라고 조언한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기 마련. 이들에게 활로의 희망을 열어줌으로써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종신형을 선고받은 재소자들한테 교도소 생활을 모범적으로 할만한 유인을 제공하고, 자살 폭탄테러를 결심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다시 상기시키는 방식 등이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 중 일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