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에서 대폭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워크 자본주의(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기업들의 경영 방식을 꼬집는 용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에 호응하는 모양새라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간) "블랙록이 올해 6월까지 지난 1년 동안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연례 주주총회에 상정된 ESG 주주제안에서 찬성표를 던진 경우는 26건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이는 블랙록이 동의한 전체 주주제안 가운데 7%에 불과하다. 2021년 동기간 47%에 달했던 블랙록의 ESG 주주제안 찬성률은 지난해 22%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도 급감했다.

블랙록의 운용 자산 규모는 9조4000억달러에 이른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운용사의 '변심'에 대해 FT는 "공화당원들로부터 '지나치게 깨어 있다(워크 자본주의)'는 비판을 계속 받은 뒤 블랙록이 ESG 경영 기조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ESG라는 용어 자체가 좌우 정치인들에 의해 입맛대로 무기화되고 있다"며 "더 이상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지나친 ESG 추진'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규제감독 당국이 주주제안의 문턱을 대폭 낮추는 바람에 중복 안건 등이 급증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에 의하면 올 들어 현재까지 미국 기업 주총장에서 표결에 부쳐진 ESG 제안은 340건에 이른다. 작년 한해 기록된 300건을 이미 넘어섰다.

블랙록이 전날 발표한 입장문에도 "너무 많은 주주제안이 과도하거나 경제적 실익이 없거나 단순 중복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어서 반대한 것"이라는 해명이 담겼다. 예를 들어 블랙록은 작년 아마존 주주총회에서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 현황을 공개하라'는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SEC이 기업들의 기후위기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칙 제정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에 아마존은 올해부터 자발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 정보를 공개했다. 그럼에도 올해 아마존 주총에서 비슷한 안건이 상정되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