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상위 등급인 ‘AAA’에서 ‘AA+’로 강등하면서 한국 재정당국도 긴장감에 휩싸였다. 확장 일변도였던 전 정부의 재정정책 여파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로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계 기관은 2일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피치가 1일(현지시간) 1994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출렁이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주식, 채권과 환율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아직 시장에선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등급 하향보다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심화하며 국내외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미국처럼 재정 악화에 따라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 등으로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한국 역시 신평사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치는 2012년 9월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신용등급을 위에서 네 번째인 ‘AA-’로 유지하고 있다. 피치의 등급은 ‘AAA’ ‘AA+’ ‘AA’ ‘AA-’ ‘A+’ 순이다. 미국과 한국의 신용등급은 세 단계 격차를 유지하다 이번에 두 단계 차이로 좁혀졌다. 무디스와 S&P는 한국에 각각 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인 ‘Aa2’와 ‘AA’를 부여했다.

글로벌 신평사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국가부채 문제에 대해선 꾸준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무디스는 지난 5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통계적 압력이 생산성 향상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 전문기관들도 비슷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6월 보고서에서 국가부채비율이 지속해서 상승할 경우 한국은 2032~2033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임계치에 도달할 것으로 관측했다.

재정준칙 도입과 건전 재정 기조로의 전환 등 신평사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은 요인들도 실제로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악화로 5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088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이미 정부의 올해 전망치(1100조3000억원)에 근접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재정준칙은 여야 정쟁 속에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