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칼럼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지난 6월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간한 보고서 하나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제목은 ‘디톡스(detox) 개발’이고, 부제는 ‘환경유해보조금의 방향 돌리기’였다. 보고서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전 세계가 화석연료 사용에 제공하는 약 6조 달러(약 7700조원) 규모 보조금의 해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조금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정부의 직접적 재정 보조를 포함해 가격 체계를 왜곡하는 무역장벽, 가격 상·하한제 같은 명시적(explicit) 보조금이다. 둘째, 화석연료가 야기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비용 지출은 물론, 인간의 생명 및 건강 피해 비용을 의미하는 암묵적(implicit) 보조금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보조금을 철폐함으로써 화석연료 소비를 줄일 뿐 아니라 매년 수십만 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보조금 개혁 정책은 에너지 가격을 올려 서민 부담을 키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고소득층에게 더 큰 금전적 부담을 지움으로써 건강 피해에 훨씬 취약한 빈곤층을 지지하는(pro-poor) 바람직한 정책임을 강조한다.

얼마 전 ‘디톡스 개발’ 보고서를 작성한 세계은행 박사들이 세미나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나도 주제 발표를 위해 이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의 전기요금 현황과 전력시장 구조를 설명하면서 2022년 한국전력공사 적자 규모가 33조6000억원에 달했음을 지적했다.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보고서의 정의에 따르면, 한국에서 전기요금 통제로 인한 한전 적자는 명시적 보조금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고. 그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명시적 보조금 규모는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 각각 1·2·3위를 차지했으며, 모두 산유국이다. 2022년 1년간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를 합치면 320억 달러에 달한다. 세계은행 기준으로 보면 1차 에너지원의 93%를 수입하는 대한민국은 세계 4위 규모의 화석연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팬데믹 기간 에너지 수급 불균형과 러시아 발(發) 전쟁으로 2022년 국제 에너지 가격은 폭등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왜곡된 전기요금 구조를 고수했다. 그로 인한 사회적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전기요금이 낮은 탓에 누구도 전력 소비를 줄이는 데 관심이 없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 투자가 생기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탄소와 대기오염물질 배출은 증가한다.

왜 한국 사회는 전기요금 정상화에 소극적일까? 2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낮은 전기요금은 산업 경쟁력 확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통념이다. 하지만 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지금은 탈탄소 경쟁력이 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대다. ESG의 E는 곧 탄소감축을 의미한다. 전기요금이 싸다면 기업으로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공정과 기술에 투자할 유인이 없다.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둘째, 전기요금 인상은 서민 복지에 역행한다는 통념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실증 분석을 통해 적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전기요금 정상화로 인해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에너지 복지 차원의 직접적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럽 국가들은 전기요금을 원가와 사회적 비용을 반영해 현실화하되, 취약계층에게는 정부 재정을 통한 실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이것이 바로 에너지 가격 및 복지 정책의 올바른 방향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