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모자이크 안 된 영상을 봤는데 손이 덜덜 떨리고 진짜 토할 것 같아요. 자꾸만 생각나고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낮에 서울 신림동 한복판에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시민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가운데, 사건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이 온라인상에 빠르게 퍼져 시민의 충격이 가중되고 있다. 무분별하게 확산한 구체적 범행 장면이 일상 속 불안감으로 이어졌다는 반응이다. 이에 2차 피해와 집단 트라우마를 막기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잔상이 계속 남아요"…'신림동 칼부림 풀 영상'에 '충격'

조 씨가 젊은 남성을 흉기로 수차례 공격하는 모습.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조 씨가 젊은 남성을 흉기로 수차례 공격하는 모습.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앞서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지난 21일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신림역 범인 얼굴', '신림역 칼부림 풀 영상' 등 제목으로 피의자 조모 씨(33)의 범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여과 없이 유포됐다. 영상에는 피해자가 몸부림치며 저항해도 조 씨가 여러 번 흉기를 휘두르다 달아나는 장면과 함께, 옷과 얼굴 등에 피를 흥건하게 묻힌 채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현재는 신고 처리된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동영상 잘리기 전에'라는 제목의 한 영상은 이날 기준 조회수 24만5047회에 달할 정도로 적지 않은 인원이 시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일부 플랫폼에서 영상이 자동 재생돼 불특정 다수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영상에 노출된다는 것. 온라인상에서 이 영상을 접한 한 시민은 "제발 찾아보지 마라. 잔인한 영화란 영화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냥 보는데, 이건 도저히 못 견뎌서 중간에 끊었다"며 "잔상이 너무 심하다. 나처럼 후회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다른 시민들도 "범인이 피해자들에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장면이 잔상이 계속 남는다"라거나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다가 너무 충격받았다"라며 공감했다.
21일 오후 2시 7분께 서울 신림동 인근 칼부림 사건 범인 조모 씨가 도주하고 있는 장면. /사진=뉴스1
21일 오후 2시 7분께 서울 신림동 인근 칼부림 사건 범인 조모 씨가 도주하고 있는 장면. /사진=뉴스1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태원 참사'에서 압사당한 고인들의 영상을 접하고 힘들었는데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앞서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수십명의 사상자의 모습이 담긴 모습이나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장면, 인파가 몰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등의 장면이 포함된 영상들이 유포돼 트라우마와 불안을 호소한 이들이 있었다.

당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러한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에 나섰다.

얼마 전 홍콩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도 20대 여성 두 명이 사망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후 피해 여성들이 공격당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졌다. 당시 홍콩 적십자사는 "TV나 SNS에서 공격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해당 영상을 보게 된다면 부모는 먼저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성인과 어린이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영상 유포했다간 '철창신세'도…"현실 감각 느끼려 노력해야"

신고 처리돼 확인이 불가능한 '신림 칼부림' 범행 당시 영상.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신고 처리돼 확인이 불가능한 '신림 칼부림' 범행 당시 영상.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이 같은 영상을 유포하는 것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시민들의 주의가 당부 된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범행 영상을 메신저 등을 통해, 타인에게 반복적으로 도달하는 경우도 1년 이하의 지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신림동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24일 범행 영상이 무분별하게 돌고 있는데 최초 유포자를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윤희경 경찰청장은 "영상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있어서 모니터링을 이어 나가고 있다"며 "현재까지 영상 삭제요청을 17건 하는 등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무분별하게 확산한 영상은 경찰의 제재 이후 대부분 삭제되거나 신고 처리된 상태로 확인됐다. 경찰은 영상물이 반복적으로 게시되는 온라인 게시판 등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위원회에 삭제 및 접속차단 조치를 의뢰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 확산한 범행 영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성을 당부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YTN '뉴스라이더'에 출연해 "문제는 그렇게 엄중하게 처벌한 전례가 없다 보니까 사실 국민들의 어떻게 보면 경각심을 호소하고 싶다"며 "이게 어른들 사이에서는 크게 문제가 안 될지 모르지만, 미성년자들에게 이런 끔찍한 실제 영상이 퍼지게 되면 아이들이 인명 경시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고 모방(범죄)을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걸 호기심으로 정보 차원에서 옮기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 그것이 결국은 사회를 더 악화시키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는 "타인의 재난을 목격한 경우에도 정신적인 외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지만, 생생한 영상이나 자료로 목격한 경우에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을 수 있다"며 "그분(피해자)들의 상황에 충분히 애도를 표하되, 현실과 구분할 수 있도록 계속 현실의 감각들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평소 마음이 힘들 때 연락했던 지인에게 연락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