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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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통신 3사는 최근 미국, 영국 등에서 벌어지는 일명 ‘텔레플레이션’ 현상을 희망 사항 0순위로 꼽는다. 해외 통신사들은 물가 상승에 따라 통신비를 올리며 일정 수준의 수익성을 유지하지만, 국내에선 그럴 수 없다는 ‘피해 의식’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이대로는 한국 통신업계의 발전이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통신비 더 내린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6일 가계 통신비 인하 대책을 발표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민생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서민 통신비 부담 절감 대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 5세대(5G) 중간요금제 출시, 알뜰폰 활성화가 대표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내 5G 요금제 최저 기준을 인하하고, 로밍 요금을 낮추는 방안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 유럽 등 주요 통신사가 최근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잇따라 통신비를 인상하는 현상과는 반대다. 영국 통신사 BT는 최근 14.4%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버진미디어도 연내 통신비를 인상하겠다고 예고했다. 전기 요금·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하면 통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영국은 물가 지표에 따라 매년 4월 요금 인상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이용약관에 포함하고 있다.

영국에선 최근 1년 새 통신비를 인상한 기업이 5곳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BT를 비롯해 보다폰(9.3%), O2(11.4%), EE(9.3%), 쓰리(4.5%) 등 영국 통신사 5곳의 평균 인상률은 9.72%다. 미국에서도 3대 통신사 중 2곳이 지난해 6월 통신비를 올렸다.

미국 1위 통신사 버라이즌은 물가 상승을 이유로 1.35달러를 인상했다. 2위 AT&T는 단일회선 기준 6달러, 가족회선은 12달러를 올렸다. 운영 비용과 임금 인상에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텔레플레이션’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매번 매 맞는 통신3사

하지만 국내에서 텔레플레이션을 기대하는 것은 꿈같은 얘기로 통한다. 정부는 물가가 오를 때마다 통신비 인하 정책을 꺼내 든다. 통신비는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특히 통신3사는 공공재인 주파수 자원을 임대해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매번 ‘앉아서 돈 번다’는 눈총을 받는다. 과기정통부 등 정부 요청에 적극 협조해줘야 하는 처지여서 통신비 정책도 정부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는 구조다.

그렇다고 국내 통신사가 해외 통신사처럼 통신비 인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역시 1년 새 전기요금이 약 33% 상승하면서 데이터센터, 기지국 등 설비 운영 부담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시설 구축 및 운영에 필요한 반도체 서버, 통신장비 가격도 급상승하면서 부담은 가중됐다는 전언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경영 환경에 따라 가격을 조절하면서 미래 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이 부럽다”며 “한국 통신업계는 정부가 늘 ‘어떻게든 가격을 내리라’고 쥐어짠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수익성이 나빠지면 통신사가 미래 서비스를 위해 투자할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와중에 통신사가 정부 요구에 따라 가격을 낮추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소비자 사이에선 통신 3사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고 있다. ‘진작 낮출 수 있던 서비스 요금을 그동안 높게 받은 것 아니냐’는 식이 대부분이다. 특히 알뜰폰 사업자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이런 불만은 더 확산하고 있다. 알뜰폰 사업자인 KT스카이라이프는 지난달 30일 월 4만9200원에 5세대(5G) 데이터 200GB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새로 출시했다. 비슷한 가격에 SK텔레콤은 8GB(4만9000원), KT는 10GB(5만5000원)를 제공하는 것과 차이가 20배 이상 난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통신사 재량으로 가격을 조절하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며 “통신사도 다른 수익원을 발굴하고 키워낼 방안을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