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뛰쳐나온 KAIST 교수님…"XR도 곧 흔해질 것"[인터뷰+]
"에어팟이 처음 나왔을 때, 콩나물이라고 조롱했지만 이젠 다들 쓰잖아요. XR 기기도 지금은 생소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앞으로는 흔하게 사용할 겁니다."

29일 <한경닷컴>과 만난 하태진 버넥트 대표(사진)는 확장현실(XR) 기술의 현주소를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하태진 대표는 국내 1호 증강현실(AR) 연구실인 KAIST 증강현실연구센터(UVR Lab)에서 2005년부터 10년간 가상현실(VR)과 AR 기술을 연구했다. 2013년부터는 같은 대학원의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연구 교수로 재직했다.

국내외서 60여편의 논문을 내며 연구활동을 이어가던 중 그는 2016년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주변에서는 만류를 했지만, 하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오큘러스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때가 됐다"고 느낌이 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오큘러스 리프트는 600달러에 출시됐는데, 예약 판매를 실시한 지 하루 만에 3개월 치 물량이 팔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XR 기술로 산업 현장 혁신우리가 선두주자"

하 대표는 창업 당시를 회고하며 "오큘러스 이전에도 연구용 VR 기기는 있었지만 가격이 수백만원에 달해 개인이 쓰기엔 부담이 있었다"며 "오큘러스가 100만원 미만의 제품을 내놓은 것을 보고 대중화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게임·비디오 등 콘텐츠에 주목할 때, 그가 눈여겨본 것은 산업 솔루션이었다. 산업 현장에서 XR 기술을 사용하면 종이 도면을 일일이 들고 다니는 것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봤다. 기업체가 개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력을 갖춘 점도 고려했다.
하태진 버넥트 대표가 자사의  '버넥트 뷰(VIRNECT View)'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버넥트 뷰는 버넥트 메이크(VIRNECT Make)로 제작한 XR 콘텐츠를 시각화해 업무 속도와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하태진 버넥트 대표가 자사의 '버넥트 뷰(VIRNECT View)'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버넥트 뷰는 버넥트 메이크(VIRNECT Make)로 제작한 XR 콘텐츠를 시각화해 업무 속도와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이런 배경에서 '버넥트 리모트(VIRNECT Remote)'가 탄생했다. 버넥트 리모트를 활용하면 실시간 무선 영상과 XR 기술을 활용해 원격으로도 작업을 지원·감독·기록할 수 있다. 스마트 글라스 등 XR 기기를 착용한 현장 작업자와 사무실에 있는 전문가를 버넥트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하는 식이다. 버넥트 리모트에 대해 하 대표는 "전문가와 현장 작업자가 같은 화면을 보며 소통할 수 있어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며 "프로그램에 구글 번역 기능을 넣었기 때문에 외국어로도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버넥트 리모트가 해외에 생산 시설을 구축한 국내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은 현지 작업자를 교육하기 위해 국내로 불러들이는데,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국경과 관계없이 원격으로도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그만큼 비용과 수고를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버넥트는 LG화학, 삼성SDI와 협업하는 등 대기업 관련 레퍼런스(사용 실적)를 확보했다. 하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후 정보기술(IT) 관련 전시회에 나갔는데, 2016년 당시 AR 제품을 전시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며 "디지털 전환(DX) 열풍에 힘입어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 대기업과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버넥트는 버넥트 리모트 외에도 버넥트 메이크(VIRNECT Make), 버넥트 뷰(VIRNECT View) 등을 서비스하고 있다. 버넥트 메이크는 프로그래밍 없이 원하는 정보를 XR 콘텐츠로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파워포인트만 할 줄 안다면 버넥트 메이크를 통해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하 대표의 설명이다. 버넥트 뷰는 버넥트 메이크로 제작한 XR 콘텐츠를 시각화해주는 솔루션이다.

버넥트는 '자물쇠 효과(록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소비자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비슷한 서비스로의 수요 이전이 어렵게 되는 현상을 '자물쇠 효과'라고 한다. 하 대표는 "맞춤형 솔루션은 고객사에서 요구하는 보안 수준, 기능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며 "한 기업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기까지 최대 1년이 필요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타 서비스로 이전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기술특례로 코스닥 도전평가기관 두 곳에서 A 등급 받아"

하 대표는 XR 시장이 조만간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이 관련 기기를 앞다퉈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공개된 애플의 '비전 프로'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고, 내년부터 삼성·LG 등도 스마트 글라스를 출시할 것"이라며 "빅테크 기업에서 하드웨어를 출시하면 기기를 활용한 소프트웨어(SW) 및 관련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넥트는 XR 시장 개화에 맞춰 기업공개(IPO) 절차를 밟고 있다. 상장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하 대표는 "향후 2~3년이 XR 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기술 확보에 집중했지만 이제 사업을 확장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해 상장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연구소 뛰쳐나온 KAIST 교수님…"XR도 곧 흔해질 것"[인터뷰+]
버넥트는 기술특례 방식으로 코스닥 시장에 도전한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혁신 기업의 코스닥시장 상장을 지원하는 제도다. 일반 기업은 상장을 위해 재무적 요건 등을 충족해야 하지만, 기술특례상장은 복수의 전문평가기관 기술평가 또는 상장주선인(증권사)의 성장성 평가가 있는 경우 질적 요건을 중심으로 심사한다.

회사는 나이스평가정보, 한국기술신용평가로부터 각각 A등급을 받았다. 회사 측 관계자는 원천 기술을 직접 개발한 점과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 가능하다는 특징이 호평받았다고 설명했다. 하 대표는 "자체 XR 엔진을 갖고 산업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은 버넥트 외엔 거의 없다"며 버넥트의 기술력에 대해 자부심을 내비쳤다.

회사 측은 내년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버넥트의 영업 손실 규모는 141억원이었다. 하 대표는 "작년부터 1분기까지 인력을 효율화해 비용을 줄이고 있어 올해부터 적자 폭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핵심 솔루션이 상용화 완료 단계에 있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