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문 감독 "남은 자들의 싸움…빌런은 따로 있단 걸 말하고 싶었다"
산재 유족 농성장 떠나 아파트 택한 여자…영화 '드림팰리스'
거실로 밀고 들어오는 환한 햇살과 4인용 식탁, 널찍한 주방과 각자의 방까지. 누구나 꿈꿀 법한 '내 명의' 아파트에 혜정(김선영 분)이 입주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기뻐 보이지 않는다.

이 아파트가 남편의 목숨값이자 동지들의 손을 놓은 대가이기 때문이다.

혜정의 남편은 의문의 산업재해로 몇 해 전 죽었다.

혜정을 비롯한 피해자 유가족은 사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한다.

싸움은 길어지고 혜정은 점점 지쳐간다.

산재 책임이 혜정의 남편에게 있을지 모른다는 유족들의 의심까지 커지면서 혜정은 결국 회사와 합의한다.

그 보상금으로 산 게 이 아파트다.

이곳은 혜정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영화 '드림팰리스'는 남편을 잃고서 산 아파트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분투를 그린 작품이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와 산업재해라는, 언뜻 한 영화에 묶이기 어려워 보이는 두 가지 사회문제를 동시에 다뤘다.

'누렁이들'(2017) 등 단편을 선보인 가성문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아파트에서 혜정의 삶은 순탄치 않다.

고3 아들 동욱(최민영)은 합의 도장을 찍어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내내 툴툴댄다.

같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수인(이윤지)은 혜정을 배신자 취급한다.

남편과 유가족들을 배신한 벌이라도 되는지, 수도에서는 내내 녹물이 나와 속을 썩인다.

산재 유족 농성장 떠나 아파트 택한 여자…영화 '드림팰리스'
수인도 버티고 버티다 결국 회사와 합의한다.

혜정의 추천으로 같은 아파트를 계약하고 새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의 꿈은 같은 아파트 입주민들의 바리게이트에 가로막힌다.

건설사가 미분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헐값에 아파트를 팔았다는 사실을 안 이웃들이 똘똘 뭉쳐 그가 이사 오지 못하도록 막아선 것이다.

혜정 역시 입주민들의 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 삼아 아파트 할인 분양 전단과 현수막을 붙인 게 화근이 됐다.

시공사의 인센티브를 약속받고 수인에게 아파트를 소개해준 사실까지 알려지며 혜정은 완전히 소외된다.

그러나 영화에선 정작 이 모든 일을 야기한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사고를 예방하지 않은 두 여자 남편의 회사나 분양가 할인을 단행한 건설사 경영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처지인 '을'들이 싸우는 틈에 책임자들은 자연스레 잊힌다.

가성문 감독은 최근 시사회에서 "갈등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이를 방기하고, 남은 자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통해 '빌런'(악당)은 따로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며 "우리가 내 옆 사람만 탓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사회 문제가 왜 생기는지를 들여다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산재 유족 농성장 떠나 아파트 택한 여자…영화 '드림팰리스'
김선영과 이윤지의 현실적인 연기는 스토리에 힘을 더한다.

입장도 다르고 각기 다른 선택을 하지만, 두 캐릭터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혜정과 수인이 한밤중 방범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누구도 언성을 높이지는 않지만, 눌러왔던 감정을 조용히 폭발시킨다.

김선영은 "(부조리에 대한) 투쟁을 포기한 사람들의 삶을 깊게 조명한 작품이라 울림이 컸다"며 "40대 여자의 서사가 있는 시나리오를 만나 너무 반가웠다"고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그는 이 영화로 제20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31일 개봉. 112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