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환경서 많은분 슬픈 경험"…더욱 구체화한 언어로 과거사 언급
[한일정상회담] 과거사·후쿠시마…기시다의 '성의', 한일관계 동력 될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 방문에서 과거사 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 대해 비교적 진전된 입장을 밝히면서 앞으로 한일관계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한일 정상의 7일 공동기자회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기시다 총리의 발언 중 하나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저 자신은 당시 가혹한 환경아래 많은 분들이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기시다 총리의 이 발언은 한국 정부가 지난 3월 주도적으로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에 일본이 충분히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 나왔다.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으로 한일관계가 정상화 궤도에 오른 만큼 국내에선 이번엔 기시다 총리가 성의를 보일 차례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기시다 총리가 직접 언급할 것인지가 외교가의 관심사였는데, 예상 밖의 표현을 쓴 셈이다.

이 발언은 일본의 기존 과거사 담화에 담기지 않은 '기시다 총리 자신의 언어'라는 평가가 한일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나온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기존 담화에 '플러스알파'이자 '제3의 표현'이라며 "기시다 총리 개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반성과 사죄가 과거 일본 식민 지배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반면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놓였던 상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성격이어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이번 발언이 어디까지나 기시다 총리 '개인'의 생각을 전제로 한 것인 데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는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여론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에둘러서 알기 어렵게 표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우리 국내에서 비판이 있을 거라고 본다"면서도 "이전에 일본 총리들이 했던 수준의 답습이냐, 후퇴냐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금 더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달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과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방문하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한일 정상이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과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함께 찾는 것은 처음인데, 여기에는 양면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일본 총리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직접 기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자칫 2차대전 가해국으로서 일본의 책임을 희석하지 않도록 신중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이 한국민들의 불안감을 달랠 수 있을지도 변수다.

한국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니터링과는 별개 프로세스로 그간 일본으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양자 차원의 국장급 회의도 가동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 시찰단 방문도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국은 IAEA 국제검증이 이미 진행 중인 상황 등을 고려해 이번 시찰단 방문을 '검증' 성격으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한 여러 이해관계국 가운데 한국을 위해 특별히 보완적 조치를 취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일본으로서는 한국민의 우려 불식을 위해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은 IAEA 리뷰를 받으면서 높은 투명성을 가지고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성의 있는 설명을 해나갈 생각입니다만, 한국 국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은 잘 인식하고 있다"고 회견에서 말했다.

다만 한국의 시찰단 파견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국과 태평양도서국 등 한국 외에도 주변 여러 국가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에 그간 우려를 표시해 왔지만 별도 시찰단을 파견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시찰단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오염수 방류를 지지해 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문제가 있다고 평가한다면 현재 5차 중간보고서까지 나온 IAEA 검증과 서로 충돌하는 결과로 이어져 혼선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