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좀비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채무불이행(디폴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도 법원의 파산보호 절차를 기피하고 법정 밖에서 부실채권을 교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미국 기업 디폴트의 4분의3이 부실채권 교환 등의 형태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2020년엔 전체 디폴트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2년만에 25%포인트 가량 늘어났다. 점점 더 많은 부실 기업들이 법원의 챕터11 파산보호 절차 대신 사적구조조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시간) "값비싼 챕터11 절차를 피하려다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좀비기업들의 눈속임이자 깡통 돌려막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무디스는 한번 디폴트를 냈던 부실 기업의 재(再)디폴트 비율이 현재 47%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재디폴트를 선언했던 기업 중 대다수가 결국 법원 파산보호 절차로 이어게 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미국 매트리스 제조기업 썰타 시몬스(올해 1월), 베드배스앤비욘드(이달 중순) 등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엔비전 헬스케어도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사적구조조정을 선호하게 된 배경에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있다. PEF 운용사들은 2020년~2021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대규모 차입금을 일으켜 부실 기업들을 사들였다. 무디스는 "기업 바이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들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 기업들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내야 한다"며 "이들은 부실 기업들이 사적구조조정을 받는 게 자기자본이라도 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정식 파산보호 절차를 꺼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높아진 기업의 재디폴트 비율을 고려하면 사적구조조정 절차는 오히려 채권자 등의 회수율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채권 교환 등으로 수명을 연장한 기업이 결국 한계에 내몰리면 채권자의 손실 규모가 더 누적된 채 법원에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FT는 "이런 추세는 중앙은행의 긴축에 따른 차입비용 상승, 경기 둔화 우려 등에 직면한 부실 기업들의 폭탄 돌리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P글로벌레이팅스는 투기 등급 기업들의 디폴트 비율이 현재 2.5%에서 올 연말엔 4%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도 최근 2.7%였던 정크본드 디폴트 비율이 내년 3월까지 5.6%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은행 위기로 대출 조건이 강화하면서 '디폴트 후폭풍'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날 무디스는 올해 1분기 디폴트를 선언한 미국 기업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어나 20곳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김리안/장서우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