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유자광,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
유교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걸어간 길…다시 보는 유자광
"김종직이 우리 세조를 저훼(비방하고 헐뜯는다는 뜻)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그 부도한 죄는 마땅히 대역으로 논해야겠습니다.

"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유자광(1439∼1512)은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는 김종직(1431∼1492)이 생전에 쓴 글이 세조(재위 1455∼1468)가 단종(재위 1452∼1455)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글이라며 글귀 하나하나 풀어 왕에게 아뢰었다.

이 일로 김종직은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 시체를 욕보이는 부관참시를 당했고 김일손·권오복·권경유·이목·허반 등 신진 사림파 다수가 화를 입었다.

조선 최초의 사화다.

조선사의 '문제적 인물' 유자광은 대부분의 평가처럼 손에 꼽히는 간신일까.

고(故) 정두희 서강대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인 계승범 서강대 교수가 함께 쓴 '유자광,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은 유자광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책은 첩의 소생으로 태어나 병조정랑, 한성부판윤, 장악원제조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결국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은 유자광의 행적을 다양한 사료와 함께 보여준다.

저자들이 특히 주목한 건 유자광이 살아야 했던 시대다.

유교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걸어간 길…다시 보는 유자광
유자광은 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할 때 자원해 종군한 일을 계기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29세의 나이에 중앙 정치 무대를 밟았고, 두 번에 걸쳐 공신 책봉을 받았다.

그러나 천민 출신의 첩이 낳은 아들이었던 유자광에게 태생적 한계는 분명했다.

저자들은 유자광이 세조부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등 5명의 왕을 모셨으나 유교 사회 조선에서 언제나 '아웃사이더'이자 '이방인'이었다고 짚는다.

더욱이 그가 정계에서 활동한 시기는 서얼에 대한 차별이 본격화하던 때이기도 했다.

책은 임금의 총애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던 유자광의 '승부사'적 측면이나 사신으로 두 차례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던 일화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면모도 짚는다.

그러면서 "조선왕조의 지배 구조 및 '유교 사회를 향한 거대한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충분히 고려해야 그가 남긴 삶의 궤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자광의 사례는 전환기의 조선 왕조를 파악할 수 있는 현미경일 뿐만 아니라, 미시사와 거시사를 연결해 주는 망원경인 셈이기도 하다.

" (448쪽)
책은 고인이 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완성했다.

스승이 미처 마치지 못한 문장을 채우고 이야기를 더해 한 권의 책으로 내놓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푸른역사. 46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