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생산공장을 전격 방문했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12일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공장을 찾아 약 1시간 동안 브리핑받고, 관계자들과 대화했다. 차이치 정치국 상무위원, 허리펑 부총리, 황쿤밍 광둥성 서기, 왕웨이중 광둥성장 등 중앙과 지방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총출동해 그를 수행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외국 투자자가 기회를 잡아 중국에 오고, 광둥성에 와서 중국 시장을 깊이 경작하고 휘황찬란한 기업 발전을 이루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현지 한국 기업 방문은 전례 없는 일이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중국과 외국 기업이 합작한 섬유 기업에 다녀간 게 시 주석이 중국 내 외국계 기업을 방문한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일각에선 LG디스플레이가 광저우 최대 외자 기업 중 하나인 데다 시 주석이 저장성 당 서기였던 2005년부터 생전의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시작된 인연이 방문 기업 선정에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최고 지도자의 한국 기업 ‘깜짝 방문’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최근의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다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에 협력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라는 것이다. 시 주석의 움직임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2주 남겨둔 시점에 이뤄진 것도 공교롭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 공급망 협력은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한·중 간 우의를 강조하는 덕담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의 속셈을 파악할 수 없지만,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중국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2016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경제보복 조치로 시작된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금지령)은 완전히 해제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또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는 또 어떤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유엔의 제재를 피해 북한을 지원하며 오히려 핵무장을 방조·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나.

시 주석의 이례적 행보는 우리 기업들엔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사업 비중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고는 해도 중국은 미국과 함께 한국 기업들의 양대 투자국이자 수출 시장이다. 미·중 패권 경쟁 여파로 자칫 샌드위치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