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가즈오 신임 일본은행 총재는 “수익률곡선제어(YCC)를 비롯한 통화완화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첫 출근날인 10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YCC는 채권 매입·매도를 통해 장단기 금리 차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을 뜻한다. 일반적인 양적완화보다 더 적극적인 통화정책으로 여겨진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우에다 총재가 취임하면 전임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10년간 시행한 초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우에다 총재의 일성은 일단 ‘현상 유지’였다.

당분간은 그대로

우에다 총재는 이날 일본은행으로 처음 공식 출근하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여는 등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과거 10여 년 동안 금융완화를 지속하며 아베노믹스를 지탱해온 구로다 전 총재의 뒤를 이어 전날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우에다 日銀 총재 "당분간 금융 완화 유지"
우에다 총재는 이날 오후 늦게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은행의 통화 완화책은 매우 강력한 정책”이라며 “전임 지도부의 대대적인 부양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경제 전반과 물가, 금융 상황을 적절히 파악해 물가상승률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목표치인 2%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면 통화정책을 정상화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통화 완화책의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보다 지속 가능한 기틀을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금융완화 정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YCC에 대해서는 “일본의 현재 경제 및 금융시장 상황 등을 살펴보면 당분간 YCC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면서도 “일본은행은 조심스레 YCC의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우에다 총재는 올 2월 의회 청문회에서는 “YCC로 인한 일본 채권시장의 기능 저하가 일부 있다”고 부작용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재검토할지 구체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날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달성하는 것은 일본은행의 큰 책임”이라며 “일본의 은행 시스템을 둘러싼 환경이 더욱 악화함에 따라 일본의 금융 중개 기능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 등 서구권 주요 은행들의 줄도산 위기에 대해서는 “일본의 금융회사는 충분한 유동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분간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기자회견 직전에 132.03엔까지 하락했지만 회견 이후 소폭 반등했다.

오랜만에 학자 출신 사령탑

도쿄대를 졸업한 우에다 총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도쿄대 경제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98년부터 7년여간 일본은행 심의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경제학자 출신 일본은행 총재로 기록됐다.

일본이 1990년대 후반부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세)에 빠진 상황에서 우에다 총재는 1999년 제로금리와 2001년 양적완화 정책 도입을 이론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부터 미국 중앙은행(Fed) 등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가운데 구로다 전 총재가 이끌던 일본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우에다 총재가 구로다 전 총재의 금융정책에 당장은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출구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