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칼럼집 '날씨와 얼굴' 출간…동물권·환경·노동 등 시스템 이면의 얼굴 다뤄
"에세이, 칼럼 등 장르 아우르는 올라운더 되고싶어"
이슬아 작가 "법 바뀌면 삶도 달라져…제 글이 더 정치적이길"
이슬아(31) 작가의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2022) 속 슬아는 육식을 멈췄다.

작가인 슬아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되는 고기, 배달 음식 쓰레기 등 식문화에 대한 원고도 쓴다.

실제 이 작가는 4년 전 "누군가를 덜 착취하는 방식으로" 식단을 바꾸고자 비건(vegan·채식주의자) 지향인이 됐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강타한 파주·연천 지대 살처분 영상을 보던 중 돼지의 눈과 마주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난 2년간 한 일간지에 동물권과 기후위기 등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했고, 최근 책으로 묶어 첫 칼럼집 '날씨와 얼굴'(위고)을 펴냈다.

그간 수필집과 인터뷰집, 소설 등 '나'의 서사를 풀어낸 그가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글쓰기를 한 셈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동물권과 환경 문제 등을 둘러싼 시스템,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개인의 고유함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날씨와 얼굴'은 그래서 붙인 제목이다.

이슬아 작가 "법 바뀌면 삶도 달라져…제 글이 더 정치적이길"
칼럼집은 작가의 너른 시야를 보여준다.

공장식 사육으로 고통받는 동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장애인, 열악한 환경의 택배·청소노동자, 발붙인 땅에서 싸워야 하는 이주여성까지 그의 마음에 걸렸던 얼굴들을 고루 비춘다.

이 작가는 칼럼을 위해 환경 분야 활동가, 정치인, 택배회사 노조 대표, 청소 노동자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각종 자료와 법안, 통계, 국회 국정감사 영상까지 꼼꼼히 챙기는 품도 들였다.

그는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며 "사회 자체가 압력이 높다.

무탈하게 생애 주기를 겪고 아무 곳에서도 소외되지 않는다면 특이한 경우다.

인간의 불행이 기질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 문제라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고통, 차별, 부조리를 꼬집은 목소리는 저항의 글로 읽힐 수 있지만, 이 작가 글은 투쟁과는 결이 다르다.

개인은 세상에 영향을 주는 힘이 있으며, 서로 연대해야 할 운명 공동체라고 격려하는 화법을 지녔다.

그의 '단짠'(달고 짠) 글맛에 매료된 독자 중엔 왜 자꾸 정치적인 글을 쓰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는 칼럼에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 한 장면을 소개하며 취약계층의 고통에 슬퍼하는 수장을 원한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이 작가는 의외로 "제 글이 더 정치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진영과 당파 싸움에 관여하거나 정치적으로 권력을 갖고 싶단 얘기가 아니에요.

법에 따라 우리 삶의 풍경도 바뀌니, 의회 정치와 입법 기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두고 싶은 거죠. 발달장애인 친구들의 24시간 모습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더 사회적이고 인문학적이고 싶다는 다짐과도 같아요.

"
이슬아 작가 "법 바뀌면 삶도 달라져…제 글이 더 정치적이길"
현재 영상 판권 계약 막바지인 '가녀장의 시대'도 외피는 가족사지만, 일종의 언어 투쟁·저항의 소설이다.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딸 슬아가 집안의 가장인 '가녀장'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소녀가장' 대신 '가녀장'을, '부모'(父母) 대신 '모부'란 표현을 썼듯이 그는 이번 칼럼집에서도 고아(孤兒) 등 차별과 배제의 언어를 꼬집었다.

그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정하는 게 말"이라며 "일례로 고아는 외로운 아이인데, 부모가 없다고 다 외로운 건 아니지 않나.

어떤 단어는 편협하고 납작해서 더 나은 단어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젊은층을 가리키는 'MZ 세대'란 표현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 같다"며 "MZ 스스로가 '우리 MZ야'라고 한 게 아니니 규정한 윗세대의 욕망이 크게 보이는 이름"이라고 했다.

규범과 틀에 매이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청년 세대로 자란 이슬아의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도 남양주의 생태주의 대안학교를 다녔다.

18살 때부터 7년간 매주 방과 후 모임인 '어딘글방'에서 글쓰기를 했다.

대학 시절 잡지사 기자, 누드모델, 웹툰 작가 등 독특한 이력도 쌓았다.

그가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 건 2018년 시작한 구독형 메일링 서비스 '일간 이슬아'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다.

학자금 대출 2천500만원을 벌고자 구독료 1만원을 받고 한 달에 20회, 편당 500원에 글을 보내줬다.

독자와 직거래하는 발상도, 오토바이를 타고 글을 배달하는 작가 모습이 담긴 B급 감성 홍보 포스터도 파격이었다.

그는 "농부에게서 사과나 고구마 등 농산물을 직거래하듯이 글을 직접 배달하고 싶었다"며 "1년간 반응이 뜨거워 학자금과 가계 대출을 갚았다.

어딘글방에서 좋은 스승과 동료를 만났고, 20대부터 지면이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현재 엄마와 아빠를 직원으로 둔 '헤엄 출판사'를 운영하며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글쓰기 교사로 일한다.

엄마는 책의 유통과 재고 관리·회계 등을 맡고, 아빠는 느슨하게 회계를 도우며 무거운 책 상자도 나른다.

이슬아 작가 "법 바뀌면 삶도 달라져…제 글이 더 정치적이길"
그는 '가녀장의 시대' 속 슬아처럼 대중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의 앞뒤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생소한 얼굴들"에 질문을 멈추지 않길 다짐한다.

"우리가 외면해온 다양한 얼굴을 담고 싶어 에세이, 칼럼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올라운더(all-rounder·다재다능한 사람)가 되고 싶어요.

제 글이 특별히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만 이해하는 이야기가 아니면 좋겠고요.

종이책이 덜 팔리는 시대인데, 독서가 흔한 대중의 일이길 바라요.

"
그는 다시 일간지에 새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나 자신 혹은 나와 타인·세계 사이의 딜레마와 갈등을 다룬다.

계간으로 전환된 '일간 이슬아'는 현재 휴재(休載) 중이지만 새봄 다시 시작한다.

다채롭게 변주하며 출판이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글을 쓰는 힘이 놀랍다.

그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멈춰지지 않는다"며 "이전 글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만회하려고 빨리 쓰는 것 같다.

모두가 읽진 않지만 여전히 글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해 헤엄치는 느낌"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