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경련의 영락(零落)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은 1961년 이병철 당시 삼성물산 사장에게 경제단체를 만들어 정부의 산업정책에 협력할 것을 요청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태동이었다. 전경련은 태생부터 정치적이었고, 성장 과정에서도 정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경제 개발과 고도성장 시대를 거치며 전경련은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 위상을 떨쳤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됐지만 정주영(현대), 구자경(LG), 최종현(SK), 김우중(대우)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아 ‘경제계 대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과 함께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이 추진되면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8년 일해재단 자금,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 사건 등에 잇따라 연루돼 ‘무용론’을 자초했다. 2000년대 들어선 재계의 각자도생 분위기가 확산하며 주요 그룹 회장이 모두 고사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때문에 고(故) 김각중 경방 회장을 비롯해 전문경영인이던 손길승 SK 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등 중하위 그룹 총수들로 바통이 이어지며 영락해갔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은 전경련을 ‘폐지론’으로까지 몰아넣었다. 삼성·현대차·LG·SK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한 것도 이때다. 전경련은 2017년 3월 ‘정경유착 근절, 한국기업연합회로 변경,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의 싱크탱크 전환’ 등 혁신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문재인 정부의 철저한 무시 속에 유야무야됐다. 이런 분위기에 모두 회장 자리를 꺼리는 탓에 허창수 현 전경련 회장이 2011년 자리에 오른 후 2017년, 2019년, 2021년에 거듭 연임 의사가 없음을 밝혔지만 다섯 차례나 연임하며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전경련이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외부 인사도 거론되고 있다. 전경련은 쇄신과 통폐합의 기로에 서 있다. 신임 회장 선출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