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AAA급인 한국전력공사가 발행하는 채권인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쓸어 담고 있다. 대규모 적자로 자금난에 처한 한전이 올 들어서만 23조원 규모가 넘는 한전채를 발행하면서 일반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가 외면받는 ‘구축효과’가 심화하고 있다. 금리 인상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와중에…AAA급 한전채가 시중 자금 '싹쓸이'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7일 1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5.9% 금리로 발행했다. 같은 날 발행한 1800억원 규모 2년 만기 회사채 금리도 연 5.75%에 달했다. 1997년 외환위기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 하반기 들어 한전채 발행 금리는 급등하고 있다. 6월 연 4%대, 9월 연 5%대를 넘은 데 이어 조만간 연 6%대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전은 올 들어 17일까지 23조1800억원어치 한전채를 발행했다. 2020년 3조4200억원, 2021년 10조3200억원 대비 급증한 수치다.

한전이 금리가 치솟고 있는데도 채권 발행을 쏟아내는 것은 대규모 적자로 인한 운영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란 설명이다.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전 영업적자는 올해 30조원을 훌쩍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들어 장기물에 대한 기관투자가 투자 심리 위축으로 5년 만기 한전채 유찰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발행 금리를 끌어올렸다.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은 2·3년물을 통해서만 목표 물량을 채울 수밖에 없다 보니 발행 금리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한전이 고금리·우량 채권을 찍어낼수록 일반 기업 회사채가 외면받는 구축 효과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채는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리테일 수요를 대거 흡수하면서 일반 회사채 시장 냉각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전채가 쏟아지면서 일반 회사채는 신용도가 좋아도 수요예측에서 미달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AA+급 우량 신용도를 갖춘 JB금융지주는 지난 16일 1000억원 규모 공모채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380억원의 주문액을 받는 데 그쳤다. 비우량채는 상황이 더욱 어렵다. 롯데하이마트 등 일부 기업은 당초 예정한 공모채 발행 일정을 내년 초로 연기했다.

신용등급이 모두 AA등급 이하인 여신전문금융회사채(카드채·캐피털채)도 한전채 물량 부담으로 수요가 줄고 있다. 연 5.9% 한전채가 쏟아진 17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여전채 발행액은 900억원에 그친 반면 상환액은 3970억원에 달했다.

농협캐피탈(AA-)은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의 신용보강을 받는데도 20일 2년 만기 300억원어치를 연 6.64%에 발행했다. 삼성카드는 지난 18일 2년 만기를 연 5.61% 금리로 발행하면서 10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대형 증권사 회사채 발행 관계자는 “한전채뿐만 아니라 산금채·수은채 등의 금리가 줄줄이 오르면서 개인 자산가들도 회사채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며 “강원도 지급보증 미이행 사태로 단기자금 시장까지 마르면서 기업들의 ‘돈맥경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주/박진우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