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재 서울대 석좌교수
이유재 서울대 석좌교수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어느 기업의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수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다. 통화 연결 전에 상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리는 음성 메시지다. 상담원의 가족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고객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는 상담원들을 위해 2017년 GS칼텍스가 도입한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이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 감정 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육체노동(physical labor)이 몸을 사용해 일하는 것처럼, 감정노동은 감정을 사용해 일하는 것이다. 고객센터 상담원, 항공기 승무원, 은행 직원, 간호사, 백화점 점원 등 대인 서비스를 주된 업무로 하는 접점 직원들이 해당된다. 그러나 감정노동이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직장에서도 직원들은 상사를 대상으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

감정노동은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겉으로 보여야 하는 감정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나타난다.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객은 직원이 명랑하고, 친절하고, 진실하며, 겸손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직원들이 언제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직원들은 실제 감정을 숨겨야 한다. 고객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다. 이래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비교적 간단한 업무에도 감정노동은 존재한다. 단순히 전화로 접촉하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감정노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감정노동자는 상당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각기 한 건은 작은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유사한 업무를 반복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대인접촉과잉 증후군(contact-overload syndrome)’이라고도 부른다. 많은 사람과 일대일로 접촉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빠지기 쉽다.

감정노동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무력감, 권태감, 의욕감퇴, 현실도피, 육체적 피로, 스트레스, 조급함, 적대감. 업무와 고객에 대한 관심이 저하되고 자존심과 성취 의욕이 감퇴한다. 그리고 고객을 기계적으로 응대하게 된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나 원격근무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신조어가 탄생했다. 우울, 무기력 등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우울감, 불안감이 분노, 격노 등으로 표출된 ‘코로나 레드(Corona Red)’, 절망감, 암담함이 표현된 ‘코로나 블랙(Corona Balck)’까지 직원의 감정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다가 엉뚱한 데서 터질 수 있다.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파악하면 왜 일선 직원이 때로는 고객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보통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직원들은 대인접촉과잉으로 인한 의욕감퇴 증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감정노동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첫째, 직원의 선별 및 직무배치에서 고려해야 한다. 누가 감정노동에 대해 저항력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게 적합한 업무를 찾을 필요가 있다.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덩가빈(Dungarvin)은 회사 웹사이트를 통해서 자사 직원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감정노동이 어떠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에 적합한 지원자를 선발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있다. 급여 및 인력관리 서비스 제공업체인 페이첵스(Paychex)는 회사 내 다양한 부서에서 요구되는 감정노동에 적합한 직원을 뽑기 위해서 실제 직무를 시연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들은 직원들이 감정노동에 필요한 배경이나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교육훈련을 통해 고객접촉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치고 의욕을 지니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GM은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을 교육할 때, 전화 응대 시 화를 참는 법을 가르친 결과 고객만족도가 증가하였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트래블 서비스에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특별 훈련시키고 있다. 씨티은행은 화난 고객이나 문제가 있는 고객을 응대하는 법을 교육하고 있다. 에버랜드도 감정노동 개념에 대한 이해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법을 교육한다.

셋째, 현재의 감정을 숨김없이 느끼고 나아가 정서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정서코칭을 통해 직원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시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능력을 말한다. 정서적으로 성숙하면 회복탄력성이 높아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이 향상된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넷째, 업무 환경을 전략적으로 설계함으로써 직원의 감정노동을 감소시킬 수 있다. 단순히 업무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비행 중 의료 응급상황 발생 시 기내에 전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드에어(MedAire)사 직원들은 생명이 위급한 비상 상황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메드에어사는 사무실을 개조하여 모든 직원들이 창문을 통해서 나무나 잔디 같은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아마존은 T자형 건물을 통해서 많은 창문을 설치하였고 이를 통해서 직원들은 시내와 호수 등 좋은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스피어스(Spheres)라는 새로운 건물을 지어 여러 종류의 열대 식물로 형성되어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바깥의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많은 창문을 제공한 것을 넘어서 친환경적인 사무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아마존의 스피어스(Spheres) 건물은 직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아마존의 스피어스(Spheres) 건물은 직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다섯째, 직원이 감정노동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직원들의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겪은 감정노동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 어려움을 자신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여러 면에서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근무시간 내에 허용함으로써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들을 배려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리츠칼튼, 월마트 등이 이러한 활동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여섯째, 경영진을 일선에 내보내서 고객을 직접 대면하게 해야 한다. 일선 직원의 불만사항 중 하나는 자신들이 겪는 감정노동을 경영진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영진은 정기적으로 고객을 상대함으로써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임원이 현장에 나가 1일 업무 지원을 하는 체험프로그램이 가능하다. 하루 동안 현장 업무를 지원하면서 업무의 고충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젯블루 항공은 콜센터에 임원들을 파견하여 상담 직원들과 함께 일하게 한다. 경영진은 직원이 겪는 감정노동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일곱째, 직원들에게 휴식을 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감정노동에 오랫동안 노출된 직원에게는 교대 근무나 부서 이동을 통해서 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는 하루 종일 고객과의 전화 응대에 시달리지 않도록 몇 시간 동안이라도 다른 업무를 보도록 한다. 직원들이 활력을 되찾고 기운을 회복하여야 감정노동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까다로운 고객의 경우 일선직원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수 있다. 이럴 때는 관리자가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 치킨 체인점 윙존(Wing Zone)은 직원이 상대하기 어려운 고객은 관리자가 대신 응대하도록 한다. 만약 관리자 역시 경험이 부족하고 상황 수습 능력이 미흡할 경우에는 본사가 직접 처리하게 한다.

GS칼텍스의 ‘마음이음 연결음’은 고객센터 상담원도 소중한 사람임을 인식시키는 캠페인이었다. 통화연결음이 바뀐 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상담원들의 스트레스가 54% 감소했다. 상담원들이 느끼는 ‘존중 받는 느낌’과 ‘고객의 친절에 대한 기대감’도 25% 정도 상승했다. 화가 나서 전화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음 연결음을 듣고 순간 마음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GS칼텍스의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은 상담원도 소중한 사람임을 인식시켰다.
GS칼텍스의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은 상담원도 소중한 사람임을 인식시켰다.
감정노동이야말로 극한직업이다. 주위의 감정노동자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자. 다 같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 한경닷컴에서 한경 CMO 인사이트 구독 신청을 하시면, 이유재 석좌교수의 글과 다른 콘텐츠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