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인터뷰 - ISSB 창립위원 백태영 성균관대 교수
백태영 ISSB 초대위원.사진=서범세 기자
백태영 ISSB 초대위원.사진=서범세 기자
지난 7월 백태영 성균관대 교수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위원으로 선임됐다. 국제적으로 통용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기준을 만드는 중요한 자리다. 14명 위원 중 아시아·오세아니아에 할당된 세 자리를 백 교수를 포함한 한중일 대표가 각각 차지했다. 지난해 11월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산하에 설립된 ISSB는 출범 4개월 만에 기준 초안을 공개하며 속도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접수한 의견서를 토대로 추가 논의를 거쳐 연내 최종안을 확정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에선 공개 초안에 스코프 3(공급망을 포함한 총 외부 탄소배출량) 공시가 포함되는 등 기업 부담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 교수는 “ISSB도 중소기업과 신흥국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ESG 공시) 압박이 통상에서 온다”며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선제적 대응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9일, 7월 첫 회의에 참석한 뒤 의견서 검토 등으로 분주한 백 교수를 만났다.

- 첫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지난 3월 S1(일반 요구사항), S2(기후 관련 공시)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그동안 이에 대해 워크숍과 설문조사에서 나온 이슈를 검토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각국에서 접수한 의견서는 9월 회의에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합니다. 연말까지 매달 회의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하게 되죠. S1, S2 이후에 무엇을 한 건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어요. S1은 공시의 큰 틀을 담은 것이고, S2는 이를 기후 분야에 적용한 것입니다. 기후는 설립 때부터 먼저 하기로 한 거라 큰 고민이 없었지만, S3부터는 고민할 것이 많습니다. 기후 외의 환경 분야를 다룰 건지, 아니면 사회 분야를 먼저 할지 결정해야죠.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필요한데, 아직은 논의 초기 단계입니다.”

- 기준 확정 이후 의무화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됩니까.

“ISSB는 기준을 만드는 기관일 뿐 이를 의무화할 권한은 없습니다. 기준이 만들어지면 기업들이 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나 SASB(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 TCFD(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회) 기준을 활용하는 것처럼 자발적 사용이 가능합니다. ISSB 기준에 따른 공시 의무화는 각국에서 결정할 문제죠. 그런데 ISSB 출범은 의무 공시로 넘어가는 변화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각국의 규제 기관이 ISSB 기준에 따른 의무 공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업들이 긴장하는 것입니다.”

- 국내에서도 의무화를 예상하십니까.

“금융위원회가 2025년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지속가능보고서 의무공시를 발표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올여름에도 이상기후가 전 세계를 덮쳤어요. 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된 거죠. 한국은 압박이 통상에서 옵니다. 수출 하나만 생각해도 불가피한 선택이죠. 부담은 되지만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에는 국가에서 여러 지원책을 고민할 겁니다. 이를 잘 활용해 체질 개선을 해놓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유리합니다. 변화를 계속 미루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 ISSB 기준을 일부만 도입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도입 방법은 3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쓰거나, 내용을 더하거나 빼는 거죠. 각국의 상황에 맞게 일부 기준을 추가하는 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빼는 건 불가능해요. 그럴 경우 ‘ISSB 기준’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입니다. IFRS와 마찬가지죠. 그래서 ISSB는 ‘글로벌 베이스 라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 사업보고서에 통합해 공시해야 하는 등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S1에서 투자자 중심, 기업가치 관점의 공시기준이라는 걸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투자자들도 볼 수 있도록 기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처럼 따로 내지 말고 재무제표와 함께 사업보고서에 포함해 같은 시점에 공시하라는 거죠.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가장 부담이 되는 건 보고 단위예요. 모든 공시를 연결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게다가 스코프 3까지 하게 되면 자회사도 아닌데 협력사까지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현실적 난관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투자자 관점, 통합 보고라는 대원칙과 현실적 어려움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자체적인 기준 제정에 나섰는데요.

“두 곳 모두 기준 제정과 의무화를 한 기관에서 진행하는 특이한 상황입니다. 규제 기관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 같은 민간 기구를 통해 기준을 직접 만드는 거죠. EU도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이 직접 나섰고요. 보통은 민간 기구를 세운 뒤 먼저 기준을 만들고 나서 규제 기관이 이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하죠. 이번엔 바로 규제로 뛰어들겠다는 것입니다.”

- 규제 기관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입니까.

“환경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 상태로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ISSB를 빨리 만들고 기후 분야를 먼저 하라는 요구가 컸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백태영 ISSB 초대위원.사진=서범세 기자
백태영 ISSB 초대위원.사진=서범세 기자
- ISSB가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관점을 채택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기업과 환경, 사회 사이에는 2가지 방향성이 있습니다. 먼저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죠. 이걸 ‘인사이드 아웃’ 임팩트라 하고 임팩트 중대성과 관련됩니다. 반대로 환경·사회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아웃사이드 인’ 임팩트이며 재무 중대성과 관련되죠. 환경운동을 하는 분 등은 당연히 임팩트 중대성을 중시해왔습니다. 기업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죠. 그래서 재무적 성과만 공시하지 말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문제를 일으킨 걸 보고하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GRI는 이러한 임팩트 중대성과 재무 중대성을 함께 보고하라는 입장이죠. 문제는 GRI가 이중 중대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재무 중대성을 불충분하게 취급한다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있습니다. 사실 재무 중대성이 더 어렵습니다.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사회적 이슈를 공시하는 건 가시적인 것이라 상대적으로 쉽거든요. 환경·사회문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기업가치 평가 문제라 측정이 간단하지 않아요. GRI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서 등장한 것이 TCFD, SASB입니다. 재무 중대성 공시만 전문으로 하는 거죠. ISSB도 투자자 중심, 재무 중대성 관점이라는 걸 분명히 천명했습니다. GRI 기준과 ISSB 기준이 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재무 중대성만 보면 범위가 좁아지지 않습니까.

“재무 중대성 기준이 GRI의 이중 중대성 기준보다 범위가 훨씬 좁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입니다. 어느 쪽이든 정보가 상당 부문 중첩될 수밖에 없거든요. 환경·사회문제를 일으키면 그 기업에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어요. 언론이 비판하고 고객들이 실망합니다. 뭔가 문제를 일으키면 기업가치에 영향을 받는 거죠. 기업가치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많은 걸 빠뜨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투자자 관점의 공시라고 해서 투자자만 이용하는 건 아닙니다. 재무제표도 일차적 이용자는 주주지만 협력업체나 정부, 소비자, 노조도 봅니다. 재무 상태가 불안정한 회사에 납품하면 대금을 못 받을 수 있거든요. 기업가치 중심의 지속가능성 공시도 투자자 등 일차 이용자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많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 그린워싱 사건이 잇따르면서 ESG 비판론까지 나오고 있는데.

“그린워싱을 막기 위해서도 강화된 공시기준이 필요합니다. 지금 구조로는 그린워싱을 막을 수 없습니다. 자발적 공시로 공시 내용과 검증이 약합니다. ISSB 공시기준 제정에 세계적인 관심이 높은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기 때문이죠. 많은 기업이 스코프 3를 부담스러워하는데, 스코프3 공시가 없으면 환경·사회문제의 외주화로 공시 부담을 피해가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직접 생산공장을 운영하지만, 애플은 모든 생산을 외주화합니다. 스코프3 공시가 없으면 애플이 OEM업체에서 초래하는 환경문제나 사회문제를 공시하게 할 수 없어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장승규 <한경ESG> 편집장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