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집중탐구

코로나19發 물류대란 수혜로 분기당 3조원씩 벌었지만…
현재 공급량 30% 달하는 신조 선박 투입 대기 중
“한진해운 파산 촉발한 ‘해운 치킨게임’ 가능성 낮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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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주식 시장에서 가장 극적으로 위상이 바뀐 종목을 꼽으라면 HMM이 빠지지 않을 겁니다. 망하기 직전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은 ‘미운 오리새끼’에서, 작년 연간 영업이익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4위에 랭크된 ‘백조’로, 이제는 다시 해운시황 정점(피크아웃) 우려에 휩싸인 데다 공매도의 표적까지 된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주가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코로나19 확산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엔 3550원으로 마감됐고,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한 물류망 차질에 해상운임이 치솟으면서 작년 5월27일에는 5만6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사실 이쯤부터 해상운임의 피크아웃 우려가 제기됐지만, 운임은 견고했고 HMM도 올해 1분기까지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왔습니다. 2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직전 분기 대비 소폭 줄었지만, 그래도 한 개 분기동안 사업을 통해 남긴 돈이 2조9371억원입니다.

하지만 지난 26일 HMM의 종가는 2만3200원으로, 고점 대비 반토막 이하가 됐습니다.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해운시황 하향 안정되겠지만…치킨게임으론 안 간다”

HMM의 주가 하락에 가장 쉽게 갖다 붙일 수 있는 논리는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이 끝났다’일 겁니다. 여기까지는 주식 시장을 비롯해 해운업계에서도 반론이 제기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항만이 마비되고, 수에즈 운하에서 전복된 선박이 뱃길을 막아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하는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했던 상황에서 형성된 ‘비정상적’ 가격이었으니까요.

실제 해상 컨테이너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지기 전 수년동안 대체로 기준선(2009년 가격 수준)인 100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올해 1월 5100을 넘어섰습니다. 많이 내려 앉은 현재도 3000대 중반 수준입니다.

문제는 운임이 어디까지 내려가느냐입니다. 여기서부터 의견이 갈리죠.

일각에서는 경쟁자를 도태시키기 위한 운임 경쟁이 결국 한진해운의 파산으로까지 이어진, 2010년대의 해운업 치킨게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항만 적체로 해운사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작년부터 컨테이너선 발주가 쏟아졌고, 해당 선박들이 인도되면 선복(화물을 실을 수 있는 선박 내 공간)의 과잉 공급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작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주된 컨테이너선의 선복량은 모두 597만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로, 2016~2020년에 발주된 421만TEU보다 많습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현재 건조되고 있는 컨테이너선 선복량은 글로벌 컨테이너선 업계의 전체 선복량의 25~30%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롱비치항의 모습. /사진=한경DB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롱비치항의 모습. /사진=한경DB
다만 그는 △선박이 늘어나더라도 화물을 처리할 항만의 규모는 그대로인 점 △해운 시황이 초호황이었던 최근 노후 선박 폐선이 없었던 점 △조만간 선박에 대한 추가적인 환경 규제가 시행된다는 점 △원양 컨테이너선 업계 재편이 어느 정도 이뤄진 점 등을 근거로 2010년대와 같은 치킨게임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우선 2010년대 중반에는 30개 가까운 원양 컨테이너선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죽어야 글로벌 해운업계가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죠. 그 ‘누구 하나’가 2016년 당시 세계 7위이자 국내 1위 선사인 한진해운이었다는 점이 뼈아프죠. 그렇게 한진해운이 사라지고, 나머지 선사들도 인수·합병(M&A)를 통해 이합집산한 결과 현재 글로벌 원양 컨테이너선 업계는 9개 선사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글로벌 해운사들이 치킨게임을 벌여 경쟁자를 도태시킬 유인이 적다는 겁니다.

낮아진 경쟁 강도에 긴장감이 낮아진 탓일까요. 코로나19 확산 사태 직후 글로벌 컨테이너선업계의 물동량 전망은 빗나갔습니다. 이게 비정상적 해상 운임 급등에 일조했죠.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으로 물동량이 줄어들 것으로 본 글로벌 해운사들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초기 선복량 감축에 나섰지만, 의외로 물동량이 줄지 않았으니까요.

이에 폐선해야 할 때가 된 선박도 계속 컨테이너 운송에 투입됩니다. 마침 운임까지 급등해주니 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도 확보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새로운 초대형 선박이 투입되면 미뤄졌던 폐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해운업계의 시각입니다. 들어오는 만큼은 아니어도 시장에서 사라질 선복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내년부터는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CII) 등급제도라는 새로운 환경규제가 시행돼 노후선박이 버티기 더 힘들어집니다. 특히 EEXI에 따라 2013년 이전에 건조된 선박 가운데 400톤(t) 이상인 선박은 탄소배출량을 20% 이상 감축해야 합니다. 당장 선박을 바꿀 수 없다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연료를 적게 태워야 합니다. 선박의 운항 속도를 높이면 연료 소모량은 속도를 높인 비율의 세제곱으로 늘어난다더군요. 선박의 운항 속도가 느려지면 같은 시간동안 나를 수 있는 화물이 줄어들어 선복 공급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고점 대비 30% 넘게 하락한 현재 운임 수준도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높은 건 맞기에 운임이 더 하락할 것”이라면서도 “해운업 환경 변화로 손익분기점(BEP)에도 못 미치는 수준까지 운임이 하락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합니다.

현재 HMM 상황은…2002년일까, 2008년일까

‘초과 이익이 있는 곳에는 경쟁자가 유입된다’는 건 경제학의 기초입니다. 원양 컨테이너선 산업에 새로운 경쟁자가 유입될 수 있다는 말이죠.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HMM의 2분기 실적을 설명하면서 “항만 적체, 운임 하락, 실적 감소가 동시에 나타난 특이한 상황”이라며 “(항만 적체로) 총 항만 대기 컨테이너량은 고점을 갱신 중인데도 불구하고 SCFI가 연일 하락하는 이유는 시장 참여자의 증가로 운임 호가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2010년대의 치킨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해운업계의 전망에 ‘희망’이 섞였을 수 있다는 겁니다.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은 업계 관계자도 “우크라이나전쟁, 중국 상하이항 봉쇄, 미국의 통화긴축 등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빅 이벤트가 한꺼번에 쏟아져 해운 시황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클락슨리서치, 로이드 등 해사 분야 글로벌 전문 기관들의 전망도 제각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망에 강한 자신감은 없는 모습이죠.

해운 시황의 변동폭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에 본 것처럼 호황기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불황기에는 그만큼의 손실이 생깁니다. 해운업 치킨게임이 벌어지기 전인 2000년대에도 현대상선이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해가 있습니다. 2000년(3819억원), 2001년(3429억원), 2003년(960억원), 2009년(8376억원) 등이죠. 대신 2002년엔 1464억원을, 2004년엔 4391억원을, 2005년엔 4028억원을, 2006년엔 1402억원을, 2007년엔 1952억원을, 2008년엔 6684억원을 각각 남겼습니다.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뒤 흑자로 전환한 2002년 현대상선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2.08배였습니다. 최근과 비슷한 수준이군요.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대체로 흑자기조가 이어지면서 연간 평균 PER이 2004년 2.48배, 2005년 4.14배, 2006년 18.05배, 2007년 30.64배로 무섭게 치솟습니다. 주가도 2001년에는 2490원으로 마감됐지만, 2007년 8월8일에는 5만1400원을 찍습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동안 HMM이 흑자기조를 이어간다고 판단한다면, 2002~2007년처럼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해운업계가 내놓는 전망과도 비슷합니다. HMM은 2016년 해운업 위기 이후 정부 지원을 업고 글로벌 해운업계에서 가장 발빠르게 2만4000TEU급을 중심으로 한 초대형 컨테이너선대를 구축했습니다. 아직 규모 면에서는 글로벌 상위 해운사에 밀리지만, 2만4000TEU급을 기준으로 현재는 선박 한 척당 수익성이 글로벌 최고 수준이라고 HMM 측은 강조합니다.

반면 지금의 상황이 반짝 실적을 기록한 뒤 장기 불황으로 진입한 2008년과 비슷하다면 HMM 주주들에겐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국내 해사업계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HMM만 막대한 돈을 번 게 아니다. 글로벌 해운사들 역시 엄청난 현금을 벌어들였고, 이들은 해상 뿐만이 아니라 육상·항공 물류까지 아우르는 종합 물류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M&A 시장에서 쇼핑에 나섰다”며 “HMM이 해상 물류에만 너무 집중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비주류의 시기심이 깔린 분석일 수 있지만,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사태를 만든 흐름과 비슷하거든요. 2000년대 후반의 호황기에 한국 해운사들은 선박 투자에 미온적이었다가, 뒤늦게 비싼 가격의 용선(배를 빌리는 것)으로 선박을 확보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바 있습니다.

영구채 전환 따른 지분 희석에 매각 불확실성까지

사실 해사업계는 당장은 해운시황보다 HMM의 매각 이슈를 더 큰 불확실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HMM을 살리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투입한 약 7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나라에 돌려주면서, 국적 원양선사의 공적 기능까지 지킬만한 새로운 주인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더 직접적으로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등이 보유한 영구채(영구전환사채·신종자본증권)가 주식의 지분 가치를 크게 희석시킬 예정입니다. 지난 3월말 기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HMM의 영구채 규모는 2조6798억원으로, 주당 5000원에 신주를 취득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 있습니다. 전부 주식으로 전환되면 현재 발행주식총수 4억8904만주보다 많은 5억3578만주가 새롭게 상장됩니다.

작년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각각 보유한 3000억원과 6000억원 규모의 HMM의 CB를 전환할 때도 개인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한 바 있습니다. HMM도 주식 발행 대신 CB의 원금과 이자를 갚겠다고 나섰지만, 산은이 거부했습니다. 이동걸 당시 산은 회장은 “이익의 기회가 있는데 전환하지 않는 것은 배임”이라고까지 말했죠. 현재 HMM 주가가 작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환가격의 4배 이상입니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회장. /사진=한경DB
이동걸 전 산업은행회장. /사진=한경DB
HMM의 몸값도 민영화의 걸림돌입니다. 지난 26일 종가 기준 HMM의 시가총액은 11조3457억원인데,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율이 40.65%에 달하거든요. 현재 수준에서 단순 계산해도 HMM을 인수하는 데 4조6120억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과 새로 발행될 지분까지 더한 HMM의 매각가는 현재 주가 기준으로 9조원 안팎까지 거론됩니다.

일단 현재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포스코그룹, 현대글로비스, SM그룹 등은 모두 표면적으론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해운시황의 하락하는 국면이기에 HMM의 몸값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HMM 주주 입장에서는 달가운 분석이 아니죠.

다만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 괜한 구설에 오르는 걸 피하려는 행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격 하락을 기다리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HMM의 지분 매각이 본격화되면 거론된 후보군 중 상당수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계열사 별로 분산됐던 물류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물류자회사를 설립하려다가, ‘대기업에 해운업에 진출하려 하느냐’는 해운업계의 반발에 홍역을 치른 바 있죠. 결국 신설회사를 설립하지 못하고 계열사인 포스코터미날에 물류기능을 통합시켜 포스코플로우를 출범했습니다.

SM그룹이 HMM을 인수할 가능성에 대해선 업계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습니다. 덩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다만 M&A로 그룹을 키워온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저력, SM상선을 비롯한 그룹의 물류 관련 자회사들과의 시너지를 고려하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HMM 프로필(8월26일 종가기준)
현재 주가:
2만3200원
PER(12개월 포워드): 1.55배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10조7649억원
목표주가: 4만4457원(1년 전)→3만917원(현재)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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