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해법 제시 없이 "덕과 정 발휘해라"…주민들 약품·물자 기부 권장
"情의 힘으로"…방역전선 '공산주의 미풍' 의존하는 北
북한이 눈앞에 닥친 방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 채 '공산주의 미풍'을 강조하며 사실상 주민들의 각자도생을 장려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1면 사설에서 "공산주의적 미덕과 미풍을 더 높이 발휘하며 덕과 정의 힘, 집단주의 위력으로 오늘의 국난을 뚫고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의 전면적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황해남도의 급성 전염병 확산 등에 직면한 현 상황을 "건국 이래의 전례 없는 최악의 국난"으로 평가하며, 이런 상황이 "지금껏 발휘해보지 못한 억센 의지와 완강한 분발력과 함께 우리 사회 특유의 덕과 정을 더 높이 발휘해 나갈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또 덕과 정, 집단주의 위력의 발휘 여부는 "단순히 도덕과 윤리에 관한 문제이기 전에 영도자를 진심으로 따르고 받드는 고결한 충의심에 관한 문제"라며 충성경쟁을 유도하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핵심 측근인 김여정·현송월 당 부부장, 조용원 당 비서가 지난 15∼16일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퍼진 황해남도 해주시와 강령군 일대 주민들에게 의약품을 기부한 것을 '솔선수범' 사례로 적극 홍보했다.

신문은 또 다른 기사에서 "경애하는 (김정은) 총비서 동지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실천적 모범은 온 나라를 서로 돕고 이끌며 아픔도 시련도 함께 나누는 인간사랑의 열기로 세차게 끓게 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철도성·재정성·정보산업성 등 내각의 각 성(省)을 비롯해 사법·검찰·안전·보위 부문 간부들, 각 공장의 지배인과 종업원들, 전쟁노병과 어린이까지 각종 의약품과 생활물자, 저금해놓은 돈을 '쾌척'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이에 황해남도 주민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친혈육의 정을 받아안았다"며 "농사를 더 잘 지어 쌀로써 우리 당을 받들어갈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신문은 주장했다.

북한은 현재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한 상황에서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 장티푸스·콜레라 등 급성 장내성 전염병까지 퍼져 의약품 조달을 비롯해 방역 부담이 가중된 상태다.

또 방역 과정에 격리·봉쇄 조치가 수반될 수밖에 없어 대규모 인력 동원이 필요한 영농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해법을 내놓는 대신, 주민들이 '덕과 정'을 발휘해 사실상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