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괴롭힌 시위, 기업은 365일 시달린다
“평온하던 마을이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이 됐다.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이 지난달 30일 낸 입장문이다. 대통령직 퇴임 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인근에서 이어진 시위의 심각성을 경고한 내용이다. 다음날인 31일, 평산마을 사저 일대는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연일 소란을 피우던 시위대도 보이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경찰이 곧바로 제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평산마을엔 3~4개 단체 40~50여 명의 ‘조용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전해 들은 한 직장인은 “전직 대통령은 말 한마디로 시위를 멈출 수 있는데, 기업들은 10년 넘게 당하고 있다”며 “그걸 그대로 수수방관한 문 전 대통령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노동가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정문 앞 도로는 ‘악질 장사꾼 삼성 이재용’이란 플래카드가 붙은 빨간색 버스가 점령하고 있었다. 과거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대표였다는 김모씨는 2001년부터 21년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 옆에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퇴직자들이 천막에 분향소까지 차렸다. 하루 평균 4~5개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삼성 계열사 한 직원은 “사실 체념한 상태인데, 오늘은 그나마 노래만 틀어놔서 좀 나은 편”이라며 “확성기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몸살을 앓는 곳은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LG 효성 등 여러 기업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극한 소음 시위’에 수년째 시달리고 있다. 소송을 제기하고, 경찰에 신고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경찰도 폭력이나 방화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뒷짐만 지고 있다.

기업 총수 자택도 예외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 앞에는 54일째 삼성전자 노조의 임금 인상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노조나 시민단체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룹 총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 모이던 시위대를 잠재운 것은 ‘강경’도 ‘미온’도 아닌 ‘법대로 조치’다. 비서실은 “피해 당사자로서 엄중하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급기야 3일 경남 양산경찰서는 사저 앞에서 내달 1일까지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단체에 처음으로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소음 기준(65데시벨)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추진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한 뒤 2017년 사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는 오히려 참여를 독려한 당이 민주당이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도 직접 당해 보니 심각성을 느낀 것 같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불법 시위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지은/양산=민건태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