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이 열린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주변 도로에서 경찰 병력들이 집회 및 시위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주변 도로에서 경찰 병력들이 집회 및 시위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대통령실사진기자단)
“트럼프 방한 때 이 정도 아니었는데, 경찰이 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네요.”

지난 20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 앞.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등의 시위가 벌어진 현장에서 만난 김 모씨(30)는 “새정권 출범하니 경찰 대응도 강해진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대진연의 ‘바이든 방한 반대’ 시위는 미신고 불법집회였다. 경찰은 대진연이 집회를 시작하자마자 참가자들을 펜스로 둘러싸 소수 인원씩 대열에서 끌어내고 피켓을 압수했다. 이날 용산구 일대 집회 관리를 위해 투입된 경찰 병력은 약 4400명에 달했다. 한미정상회담 당일인 21일에도 참여연대, 민주노총, 녹색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이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이 용산구 일대에 기동대 100개 중대를 집중배치해 큰 충돌 없이 집회가 마무리됐다.

대선 끝나자 일하기 시작한 경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 집회·시위 대응 기조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비해 대폭 강화됐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의 180도 바뀐 자세는 여러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16일 경찰은 CJ대한통운 울산 신울주 범서대리점을 점거하는 속칭 ‘물량사수투쟁’을 진행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택배노조 조합원 6명을 강제 연행했다. 지난 11일엔 경찰은 택배노조의 지점 점거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2명을 연행하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신울주 범서대리점이 해고를 남발했다”며 지점을 점거하고 있었다. 지난 4월 7일에도 CJ대한통운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성산터미널에 시설보호요청을 하자, 다음날 경찰버스 2대와 승합차 3대로 경찰병력 80명이 출동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경찰은 CJ대한통운 본사를 40일 넘게 불법 점거했던 택배노조에 “자진 퇴거를 설득하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당시 조합원 해고를 취소하라며 CJ대한통운을 압박하고 있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도 스스로 시위가 위법하다고 인정했음에도 경찰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경찰의 자세 변화는 윤석열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업무보고를 받은 뒤 경찰에 “시위·집회에 대해 선별적 법 집행이 아닌 불법에 대한 일관되고 엄정한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전 정부 시절 불법집회 등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로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는 반성이다. 경찰의 시위·집회 관련 사법처리 건 수는 2015년 491건, 2016년 512건이었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242건, 2018년 173건, 2019년 204건으로 급감했다.

노동계 “청와대 눈치보냐”

불법 집회 등 사범에 대한 검·경의 사법처리 속도도 빨라졌다. 지난 18일 청주 흥덕경찰서는 지난해 불법 집회로 불구속 입건된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 48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위반하고 SPC삼립 청주공장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대리점주를 협박하고 괴롭혀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김포 대리점주 사망사건’과 관련한 사법절차도 뒤늦게 이뤄졌다. 사건 당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던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9개월이 지난 지난달 6일 노조원들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의 시위·집회 관련 사법처리 건수는 지난 1월 1건, 2월 13건에서 대선이 끝난 3월 24건, 4월 20건으로 늘었다.

택배노조는 경찰에 이 같은 법 집행에 반발해 지난 18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법의 판단도 안끝난 사안에 경찰이 자의적으로 개입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며 "경찰은 지금이라도 '정권 코드 맞추기'악습을 버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의 강경 기조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소현/구민기/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