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점 그린 일흔의 화백 "韓작가들도 이젠 다작해야"
다작(多作)을 하면 작품 가치가 떨어진다. 한 작가의 그림을 찾는 수요는 한정돼 있으니, 공급을 늘리는 건 바보짓이다. 모두들 이런 수요 공급의 원칙이 미술시장에도 통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김명식 화백(73)은 이런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피카소는 5만 점 넘게 남겼는데도 하나같이 다 비싸지 않냐”고 그는 말한다. 김 화백은 지금까지 1만여 점을 그렸다. 개인전을 연 것만 70번이 넘는다. 그런데도 김 화백의 그림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에서도 인기다.

김 화백의 개인전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그린 유화 33점과 오브제, 수채화와 먹 드로잉 등 총 70여 점의 작품을 1~2층 전시장에 빼곡히 걸었다. 이 중 20여 점은 그린 지 3개월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김명식 화백
김명식 화백
김 화백이 화단에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1990년대였다. 어릴 적 살던 경기 고덕리(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개발 전 풍경을 그린 ‘고데기 연작’이 인기를 끌었다. 작품 세계의 깊이를 인정받은 덕분에 동아대 교수로 임용됐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같은 주제만 그리다 보니 매너리즘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04년 미국 뉴욕으로 교환교수를 떠난 게 전환점이 됐다. 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는데 창밖에 보인 집들이 그곳에 사는 이들의 얼굴로 보였고, 그 이미지를 그려낸 게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연작이 됐다. 집들의 다양한 색깔은 거주자의 인종과 성격 등 여러 특성을 상징한다. 다양한 집이 같은 크기로 늘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 화합과 평화를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미국 사회의 특징을 녹여낸 그의 작품은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2007년까지 뉴욕과 마이애미 등 다섯 곳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작품도 불티나게 팔렸다. 2010년 일본 후쿠오카로 교환교수를 떠났을 때도 그는 새로운 화풍의 작품으로 도쿄, 오사카 등 7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여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전시장에선 미국과 일본에서 개척한 화풍의 그림과 함께 김 화백이 거주하는 경기 용인의 전원 풍경을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그려낸 그림(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김 화백은 “한국 작가들은 작품을 조금만 그리려고 하는데, 세계 시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미국 전역에 있는 갤러리에 작품을 하나씩만 보내도 수백~수천 점이 필요하다. 작품이 없으면 어떻게 자신을 알리겠느냐. 끊임없이 새로운 화풍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언 미술평론가는 “김 화백은 아트페어나 문화원 등을 통하지 않고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해외 미술시장을 개척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