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부망에 비판·우려 쏟아져…일선 지검들도 릴레이 검사회의
고검장들 "총장 중심으로 적극 대처"…'검찰 공화국' 이미지 강화 우려도
'기소청' 전락할라…민주당 '검수완박'에 검찰 집단 반발(종합)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검찰이 사실상 집단 반발에 나섰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전국 고검장 회의를 소집해 대응 방안 논의한 뒤, 법안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8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법사위 소속이던 민주당 박성준 의원을 기획재정위원회로 맞바꿔 사·보임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새 정부 출범 전 마지막 임시국회인 4월 국회를 앞두고 '검수 완박' 법안 통과를 처리하기 위한 포석을 깐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검수완박' 움직임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 의견이 쏟아졌다.

권상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은 이날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법사위 사보임 상황을 설명하면서 "검수완박 법안의 핵심은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인데, 형사사법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법안도 다수당이 마음먹으면 한 달 안에 통과될 수 있는 거친 현실"이라고 적었다.

김오수 총장의 승인을 받고 게시된 이 글에는 오후까지 동조 댓글이 120개 이상 달렸다.

여당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법안 처리 방식을 비판하며 '검수완박'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검사들의 별도 입장문도 다수 올라왔다.

민주당 내에서는 '검수완박'과 관련해 2가지 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안은 검찰의 자체 보완수사 기능은 물론 사건 당사자가 경찰 수사에 이의가 있을 때 검사가 경찰에 요구할 수 있는 보완수사 요청 권한을 모두 없애는 내용이 담겨 있다.

2안은 아예 검찰과 별도 조직으로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는 안이다.

어느 안이든 검찰로서는 직접 수사 권한을 박탈당한 채 기소권만 갖는 위상 추락을 감내해야 한다.

지난 대선 기간 민주당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찰을 '기소청'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기소청' 전락할라…민주당 '검수완박'에 검찰 집단 반발(종합)
이날 일선 지검·지청에서는 국회 움직임에 대한 내부 의견과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검사 회의도 연이어 열렸다.

이날 오전 가장 먼저 회의를 연 대구지검은 "국가 범죄 대응 역량이 크게 저하되고 국민이 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는 내부 우려를 담아 대검에 전달했다.

수원지검도 일반 검사 회의를 연 뒤 '검수완박' 법안을 겨냥해 "범죄 피해를 당한 국민이 검찰에 그 피해 구제를 요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인천지검 간부들 역시 "실체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법안이 졸속처리 되지 않게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적극 대응해달라"고 건의했다.

학계에서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 학회장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보완수사 요구권 폐지'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은 당사자의 이의신청이 있더라도 경찰 단계에서 끝내자는 것인가"라며 "어떤 점에서 검수완박이 국민의 인권보호에 좋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검찰 내에선 대검 지휘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치권이 형사 사법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 하는데도 '방패막이'가 돼야 할 검찰총장과 지휘부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부 동요와 지휘부를 향한 비판이 이어지자 대검은 "정치권의 검찰 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 추진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기소청' 전락할라…민주당 '검수완박'에 검찰 집단 반발(종합)
'검수완박' 법안은 이날 오후 김오수 총장 주재로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서도 주요 안건이 됐다.

고검장들은 3시간여에 걸친 회의를 마친 뒤, "검찰 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대검 입장에 깊이 공감하며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현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검사들은 이 같은 검찰의 집단 움직임이 자칫 '검찰 공화국' 이미지를 더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지방의 한 검사는 "아직 법안 처리 논의가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혁 대상으로 꼽힌 검찰이 집단 행동에 나서면 여당에 '검찰 개혁' 명분만 만들어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검 역시 이러한 부분을 의식한 듯 이날 고검장 회의 이후 논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검찰개혁 논의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겸허히 되돌아보고,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의 실효적 확보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여 시행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일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더욱 심층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전국 검사장 회의도 열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대검 지휘부의 사퇴 명분이 될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김오수 총장이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 직을 걸고 법안 처리 저지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대검은 이날 입장문에서 "검찰총장은 검찰 구성원들의 문제 인식과 간절한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있고, 현 상황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는데, 이 메시지 안에 총장의 거취에 대한 고민도 담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당선인은 앞서 여당의 '검수 완박' 시도에 "검수 완박은 부패 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고 공개 반발하며 총장직을 사퇴했다.

다만 이날 고검장 회의에서 김 총장의 거취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검장들은 대신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현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구성원들의 결집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