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죽음의 흔적을 정리하는 직업 '트라우마 클리너'
'반려동물 묵은 짐 청소, 극도로 불결한 집 및 폐가 위생 청소, 가사도우미 알선 업체 방문 전 청소, 악취 제거, 살인·자살·사망 후 청소, 사망에 의한 상속 주택 청소, 곰팡이·홍수·화재로 인한 손상 복구, 메타암페타민 밀조 시설 제거 및 청소, 산업재해 청소, 감방 청소'
'STC 특수 청소 서비스 전문 회사'를 운영하는 샌드라 팽커스트의 명함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녀의 직업은 질병과 사망·광기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고 떠난 흔적을 정리하는 '트라우마 클리너'다.

신간 '트라우마 클리너'는 호주 작가 세라 크래스너스타인이 샌드라의 트라우마 청소 현장 20여 곳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일과 생애를 재구성한 책이다.

누군가에게 트라우마 클리너는 음울하고 괴짜 같은 매력이 있는 직업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경험한 이 직업은 등뼈가 휘는 육체노동이자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다.

트라우마 클리너는 거의 매번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한여름 내부 온도가 60도를 넘나드는 차고에서 엽총으로 자살한 뒤 나흘 지난 남자의 시신 상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샌드라는 평범한 가정집 청소 일을 하다가 어느 장의사의 소개로 하게 된 첫 작업을 선명히 기억한다.

복도에 쥐들이 뛰어다니고, 벽에는 빈 병들이 꽂혀 있었다.

오물로 시커멓게 썩은 바닥재를 세 겹 들어내야 했다.

트라우마 클리닝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마음먹고서는 각종 화학약품과 장비를 주문하고 새 회사를 등록했다.

가족들을 염탐하다가 자기 집 천장에서 죽은 사람, 은둔 생활을 하다가 숨진 뒤 반려견의 먹이가 된 사람, 작업대에 전기톱을 고정시키고 자기 몸을 던진 사람. 이들의 흔적을 치우러 출근한 샌드라는 마스크든 장갑이든 금방 벗어던지고 만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방해가 되고, 이미 충격과 상처를 많이 받은 고객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어서다.

샌드라의 활기찬 모습 이면에는 부모에게 학대받고 성소수자로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아픔이 있었다.

저자는 샌드라의 청소 현장과, 그 자신이 갖가지 트라우마의 생존자인 샌드라의 인생 역정을 번갈아 조명한 뒤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의 반대가 트라우마의 부재는 아니다.

트라우마의 반대는 질서와 균형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략) 빛이 가득 들어오는 그 집에서도 샌드라의 과거 최악의 기억들은 여전히 이 구석 저 구석을 배회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이제 대부분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좋은 기억과 새로운 계획, 살아온 삶과 살고 있는 삶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가 없다.

"
열린책들. 김희정 옮김. 464쪽. 2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