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 문턱 넘는 친환경 기술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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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혁신 제품의 샌드박스 승인건수가 2020년 3건서 지난해 20건으로 6배 넘게 늘었다.셀프 수소충전소, CO2 세탁기 시범운전. 과금형 콘센트를 활용한 V2L 플랫폼 서비스 등이 실증특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친환경 신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하는 기업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경ESG] ESG NOW
일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해주는 샌드박스의 문턱을 넘는 친환경 신기술이 눈에 띄게 늘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으로 샌드박스에 도전하는 기업이 많아진 영향이다. 정부가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발표한 후 친환경 신기술에 적용하는 기준을 낮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산화탄소 세탁기도 ‘OK’ 받아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친환경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산업융합 샌드박스 승인 건수는 2020년 3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6배 넘게 늘어났다. 대한상의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샌드박스 적용을 요청하는 기업을 돕는 민간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에 열린 제6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정부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산업융합 샌드박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이날 실증특례 10건, 임시허가 5건 등 총 15건의 규제 특례를 승인했다. 이 중 5건이 친환경 신기술이다.
대표적 사례가 이날 샌드박스를 통과한 코하이젠과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의 ‘셀프 수소 충전소’다. 현행법상 차량에 수소를 충전하는 행위는 운전자가 직접 할 수 없고 관련 법령에 따라 교육을 이수한 충전원만 할 수 있다. 심의위는 “수소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셀프 수소 충전소의 안전성과 효과성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실증특례를 내줬다. 탄소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다양한 친환경 기술을 테스트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같은 날 실증특례를 받은 LG전자의 ‘CO2 세탁기 시범운전’도 비슷한 사례다. 물이나 기름 대신 액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LG전자는 자체 연구소 내에 이산화탄소 세탁기를 설치해 2년간 시험 운영에 들어간다. 안전성이 입증되면 일반 상가 내 세탁소에 설치할 수 있도록 임시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현행법상 이산화탄소를 압축해 액화하려면 상하좌우 8m 이격, 방호벽 설치 등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가정에 이산화탄소 세탁기를 설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심의위는 이 제품이 물을 절약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해외에서 이미 상용화된 제품이란 점을 고려해 실증특례를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상용화된 친환경 제품에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도 팔 수 있어 전기차 충전 플랫폼 기업인 차지인이 신청한 ‘과금형 콘센트를 활용한 V2L(Vehicle to Load) 플랫폼 서비스’도 실증특례를 받는 데 성공했다. V2L은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전기차 외부로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지인은 V2L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과금형 콘센트를 활용해 차량 외부로 공급(220V)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전기차 소유자의 전력 판매 기준, V2L 플랫폼을 통한 전력 판매 중개 서비스 관련 기준 등이 없어 이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심의위는 전력 미공급 지역에서 2000대 이내 규모로 실증, 옥내 사용 금지, 전원 차단 장치 설치 등의 조건으로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LS전선이 신청한 ‘친환경 폴리프로필렌 전력케이블’은 소재 분야에서 나온 실증특례다. 폴리프로필렌은 제조 과정에서 고온·고압이 필요하지 않아 에너지를 덜 쓰고 폐기 후 재사용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기설비 규정에 나와 있는 절연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이 불가능했다. 심의위가 이미 유럽 시장에서 폴리프로필렌 절연 방식을 사용한 친환경 전력케이블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실증특례를 내줬다.
지난해 전체로 계산해도 다양한 친환경 신기술과 서비스가 샌드박스의 문턱을 넘었다. 수소 전기트럭 활용 물류 서비스(현대차·CJ대한통운·현대글로비스, 실증특례), 조제관리사 없는 화장품 리필 판매장(이니스프리·알맹상점, 실증특례), 친환경 재활용 아스팔트 혼합물(SK에너지, 임시허가), 의료 폐기물 멸균분쇄기(메코비, 실증특례), 친환경 아스팔트 박리방지제(에스피네이처, 적극행정), 해양 유출 기름 회수로봇(쉐코, 적극행정), 전기차 충전이 가능한 기계식 주차 시스템(신우유비코스, 실증특례) 등이 정부의 규제망에서 벗어났다. 정부가 탄소중립과 친환경에 방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강도 높은 탄소중립 드라이브를 걸면서 친환경 신기술과 서비스를 보는 눈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친환경 신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샌드박스 문호 넓어져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모래 놀이통(sandbox)에서 유래한 말로, 제도화된 것은 2019년 1월의 일이다. 혁신 제품과 기술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주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정부에 직접 규제 유예를 신청할 수도, 대한상의 등 민간 지원 기구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조치는 신속확인, 실증특례, 임시허가, 적극행정 4가지다.
‘신속확인’은 규제 여부를 30일 이내에 확인한 후 규제가 없을 경우 즉각적으로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나 기술이 규제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따라 신속확인제도가 마련됐다.
‘실증특례’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제품이나 기술에 내려지는 조치다. 규제 적용을 유예하고 일정 기간 제한된 구역에서 테스트할 수 있게 해준다. 실증특례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면 임시허가 등에 도전할 수 있다.
‘임시허가’는 관련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때 내려진다. 법령 개정 전까지 시장 출시를 선제적으로 허용한다. 적극행정은 선제적으로 기업에 유리하게 유권해석을 해주는 것을 뜻한다. 현행법과 규정만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내려지는 조치다. 송형석 한국경제 기자 click@hankyung.com
이산화탄소 세탁기도 ‘OK’ 받아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친환경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산업융합 샌드박스 승인 건수는 2020년 3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6배 넘게 늘어났다. 대한상의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샌드박스 적용을 요청하는 기업을 돕는 민간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에 열린 제6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정부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산업융합 샌드박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이날 실증특례 10건, 임시허가 5건 등 총 15건의 규제 특례를 승인했다. 이 중 5건이 친환경 신기술이다.
대표적 사례가 이날 샌드박스를 통과한 코하이젠과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의 ‘셀프 수소 충전소’다. 현행법상 차량에 수소를 충전하는 행위는 운전자가 직접 할 수 없고 관련 법령에 따라 교육을 이수한 충전원만 할 수 있다. 심의위는 “수소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셀프 수소 충전소의 안전성과 효과성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실증특례를 내줬다. 탄소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다양한 친환경 기술을 테스트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같은 날 실증특례를 받은 LG전자의 ‘CO2 세탁기 시범운전’도 비슷한 사례다. 물이나 기름 대신 액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LG전자는 자체 연구소 내에 이산화탄소 세탁기를 설치해 2년간 시험 운영에 들어간다. 안전성이 입증되면 일반 상가 내 세탁소에 설치할 수 있도록 임시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현행법상 이산화탄소를 압축해 액화하려면 상하좌우 8m 이격, 방호벽 설치 등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가정에 이산화탄소 세탁기를 설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심의위는 이 제품이 물을 절약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해외에서 이미 상용화된 제품이란 점을 고려해 실증특례를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상용화된 친환경 제품에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도 팔 수 있어 전기차 충전 플랫폼 기업인 차지인이 신청한 ‘과금형 콘센트를 활용한 V2L(Vehicle to Load) 플랫폼 서비스’도 실증특례를 받는 데 성공했다. V2L은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전기차 외부로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지인은 V2L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과금형 콘센트를 활용해 차량 외부로 공급(220V)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전기차 소유자의 전력 판매 기준, V2L 플랫폼을 통한 전력 판매 중개 서비스 관련 기준 등이 없어 이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심의위는 전력 미공급 지역에서 2000대 이내 규모로 실증, 옥내 사용 금지, 전원 차단 장치 설치 등의 조건으로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LS전선이 신청한 ‘친환경 폴리프로필렌 전력케이블’은 소재 분야에서 나온 실증특례다. 폴리프로필렌은 제조 과정에서 고온·고압이 필요하지 않아 에너지를 덜 쓰고 폐기 후 재사용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기설비 규정에 나와 있는 절연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이 불가능했다. 심의위가 이미 유럽 시장에서 폴리프로필렌 절연 방식을 사용한 친환경 전력케이블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실증특례를 내줬다.
지난해 전체로 계산해도 다양한 친환경 신기술과 서비스가 샌드박스의 문턱을 넘었다. 수소 전기트럭 활용 물류 서비스(현대차·CJ대한통운·현대글로비스, 실증특례), 조제관리사 없는 화장품 리필 판매장(이니스프리·알맹상점, 실증특례), 친환경 재활용 아스팔트 혼합물(SK에너지, 임시허가), 의료 폐기물 멸균분쇄기(메코비, 실증특례), 친환경 아스팔트 박리방지제(에스피네이처, 적극행정), 해양 유출 기름 회수로봇(쉐코, 적극행정), 전기차 충전이 가능한 기계식 주차 시스템(신우유비코스, 실증특례) 등이 정부의 규제망에서 벗어났다. 정부가 탄소중립과 친환경에 방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강도 높은 탄소중립 드라이브를 걸면서 친환경 신기술과 서비스를 보는 눈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친환경 신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샌드박스 문호 넓어져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모래 놀이통(sandbox)에서 유래한 말로, 제도화된 것은 2019년 1월의 일이다. 혁신 제품과 기술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주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정부에 직접 규제 유예를 신청할 수도, 대한상의 등 민간 지원 기구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조치는 신속확인, 실증특례, 임시허가, 적극행정 4가지다.
‘신속확인’은 규제 여부를 30일 이내에 확인한 후 규제가 없을 경우 즉각적으로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나 기술이 규제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따라 신속확인제도가 마련됐다.
‘실증특례’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제품이나 기술에 내려지는 조치다. 규제 적용을 유예하고 일정 기간 제한된 구역에서 테스트할 수 있게 해준다. 실증특례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면 임시허가 등에 도전할 수 있다.
‘임시허가’는 관련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때 내려진다. 법령 개정 전까지 시장 출시를 선제적으로 허용한다. 적극행정은 선제적으로 기업에 유리하게 유권해석을 해주는 것을 뜻한다. 현행법과 규정만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내려지는 조치다. 송형석 한국경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