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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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레저용차량(RV) 수요가 늘면서 세단 판매량이 정체돼있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차종은 준대형 세단이다. 큰 차량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져서다. 준중형, 중형 세단 시장의 입지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준대형 세단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산차 중에선 기아 K7, 현대차 그랜저만 있다. 자연스럽게 K7은 그랜저와 1 대 1 ‘진검승부’를 하게 됐다.

기아는 준대형 세단 시장을 확실히 잡기 위해 K7을 단종시키고 지난 4월 숫자를 하나 올린 K8을 내놓았다. 기아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또 소비자들에게 K8이라는 차량을 알리기 위해 어떤 마케팅 전략을 짰을까.

상황 1 고착화된 경쟁 구도
도전 1 브랜드 명을 바꿔라

어떤 상품군을 떠올리면 특정 브랜드가 ‘대표 제품’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해열 진통제를 타이레놀로 부르거나, 핫소스를 타바스코로 칭하는 사례 등이다. 이들 제품명은 아예 카테고리를 대체하는 대표 제품이다.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승합차 모델 중 하나인 봉고는 ‘봉고차’로 해당 차급을 대표했다. 준대형 차급에선 그랜저가 대표격이었다. 준대형보다 ‘그랜저 급’이라고 부르는 소비자도 많았다. 뒤늦게 나온 K7은 경쟁자 포지션이었다. ‘준대형=그랜저’라는 이미지가 확고한 상태에서 K7은 판을 뒤집어야했다.

기아는 K7만 지닌 이미지를 어필해야했다. 그랜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준대형 시장에서 K7의 인지도를 올려야했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좋은 기회가 생겼다.

기아가 ‘토털 트랜스포메이션(완전한 변화)’을 선언하면서 대대적으로 브랜드 변신을 선언하려던 것이다. 당시 경영진은 그랜저와 고착화된 경쟁구도를 타개하기 위해 K7을 K8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새로 출시하기로 했다.

K8은 기아가 브랜드를 바꾼 뒤 처음 출시하는 모델이었다. 이를 원동력 삼아 K8의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했다.

준대형 세단의 주 구매층은 40~50대다. 이들은 과거 ‘아버지 세대’와 다른 인생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보다 젊은 사고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지녔고, 소비를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했다.

K8은 ‘성공’을 인생의 가치로 삼은 옛날 사고에서 벗어났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했다. K8의 이미지는 기존 준대형 세단이 주는 안온함을 ‘지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K7보다 한 단계 높은 클래스임을 보여주며 미래지향적 분위기를 냈다.

상황 2 새로운 차명, 어떻게 알릴까
도전 2 순차적 정보 공개가 필수

K8은 프리미엄 디자인과 혁신적인 분위기를 갖춰 새로운 차를 찾는 소비층, 중후한 느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적합했다. 다만 소비자에게 이를 알리는 게 과제였다.

기아의 K 시리즈는 K3, K5, K7, K9 등 홀수로 이뤄졌다. 이 규칙을 거스른 새로운 차명을 자연스럽게 여기도록 만들어야했다. 또 브랜드를 바꾼 기아의 정체성을 새로 보여줘야했다.

자동차는 고관여 내구재다. 다른 제품보다 개인의 흥미와 관심도 등 ‘관여도’가 높다. 이런 상품군에서 높은 관심은 ‘양날의 검’으로 통한다. 새로운 차가 나왔을때 곧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차량에 대한 정보가 공개됐을때 순식간에 여론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예상치 않았던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정보를 지닌 마케터가 여론을 이끌기 위해 순차적으로 차량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상품을 출시하기 전, 소위 ‘브랜드의 시간’을 활용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중요하다.

K8은 출시 전·후의 마케팅 방법을 명확히 나눴다. 먼저 출시 두 달전부터 단계적으로 차량 정보를 알렸다.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차명을 알렸다.

제일 먼저 공개한 것은 차 이름이다. K8이라는 낯선 이름, 상품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티저 광고로 강렬한 변화를 예고했다. 출시 후엔 K8의 잠재 구매층에 초점을 맞춰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후엔 K8에 걸맞은 디자인 철학, 새로운 상품성 등 정보를 순서대로 공개했다. 이렇게 대중의 관심을 모은 결과, 사전계약 첫 날 1만8000여 대가 계약되는 기록을 세웠다.

국내 세단 중에서 첫 날 최대 계약대수다. 함께 공개한 출시 전 광고에서는 K8의 장점을 색다른 시각으로 보여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출시 후엔 배우 조승우를 모델로 광고를 했다. 배우 조승우는 광고에 출연한 사례가 적어 K8만의 이미지를 더 극대화할 수 있었다. K8 하이브리드, AWD(4륜구동) 모델을 출시할 때는 배우 유태오, 작사가 김이나를 모델로 해 구매층에 맞춰 차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광고를 했다.
‘K7 단종 → K8 출시’ 기아의 승부수, 이렇게 통했다

상황 3 신차 출시 환경이 바뀌었다
도전 3 온·오프라인 둘 다 해보자

코로나19 이후 자동차 출시 행사도 변했다. 과거엔 고객에게 차를 실제로 보여주고 직접 시승 기회를 주는게 중심이었다.

최근 1년간 신차 출시 무대는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미디어를 모아놓고 오프라인 발표회만 했던 방식에서 벗어났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영상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스트리밍 위주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채널만 옮긴 것에 불과했다. 미디어,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식이라는 평가가 내부에 많았다.

K8은 온·오프라인 두 가지 쇼케이스를 준비했다. 기아 유튜브채널 ‘캬티비’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차량을 보여줬다. 프리미엄 영상을 내보냈고 친근한 이미지의 MC가 진행을 맡았다.

물론 방송 시작 전 기아의 미디어 채널, 유튜브, 대형 포털을 통해 홍보에도 주력했다. 티저 광고 조회수는 약 81만회에 달했다. 당일 라이브 동시 접속자는 5600여 명, 당일 재생 회수는 8만5000여 회를 기록했다. 기아의 온라인 출시 행사 중 최대 기록이다.

동시에 기아의 오프라인 홍보관 ‘기아 360’에 전시 공간도 마련했다. 다양한 색상의 차를 전시하고, 상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꾸몄다. 미디어, 유튜버, 블로거 등이 방문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기아는 올해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대중에게 새 이미지를 알렸다. 방법은 ‘채널은 다양하게, 메시지는 일관되게’다. 모든 이미지와 영상의 ‘톤 앤 매너’, ‘컬러 스킴’, 카피 등이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게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일관성 있는 마케팅은 매우 중요하지만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소비자들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면 마케터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경쟁자 위치에서 있던 K8은 신차 소개뿐 아니라, ‘리 브랜딩’한 기아와 연계한 일관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직원부터 소비자까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잡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명확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은 K8 출시를 성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아는 K8을 통해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앞으로 출시할 모든 차종에도 일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김형규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마케팅 활동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need-solution-delivery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케팅이란 고객이 원하는 need를 파악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solution을 개발한 후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delivery하는 과정이다.

이 때 delivery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제품의 물리적 전달이고, 다른 하나는 메시지의 전달이다. 제품의 물리적 전달이 곧 ‘유통 전략’이고, 메시지의 전달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는 광고, 세일즈 프로모션, 대인판매, PR, direct marketing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이렇게 다양한 채널이 활용되다 보니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자칫 이곳 저곳에서 서로 일관성 없는 메시지가 전달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 어떤 메시지가 어느 기업으로부터 온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마케팅에서는 “IMC (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전략”을 강조한다. IMC란 기업이 전달하는 모든 메시지가 일관성 있고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관리하는 활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일부 대기업의 경우 광고와 PR은 홍보팀에서, 세일즈 프로모션은 마케팅팀에서, 대인판매는 영업추진팀에서, direct marketing은 온라인마케팅팀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각 부서마다 일관성 없는 메시지가 전달될 경우, 소비자들은 그 기업이 무슨 말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의 전반적인 마케팅 메시지를 관리하는 활동이 바로 IMC이다. 최근에는 IMC 활동을 전담하는 독립 부서가 존재하는 기업도 있을 정도이다. 기아의 경우에도 새로운 브랜드인 K8의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해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강조했고, 이것이 K8의 초기 성공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별적 메시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즉, 일관된 메시지라는 ‘형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메시지 ‘내용’을 선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또한, 마케팅 메시지가 추구하는 세부 목표 역시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메시지가 브랜드 인지도, 지식 형성, 호감, 선호, 구매 확신 등 소비자의 각 구매 단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길 원하는지 구체적 목표를 먼저 설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선택한 메시지가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구매 및 소비 과정에서 직접 체험될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사회판단 이론은 소비자의 태도에 관한 고전 이론이다. 이 이론은 어떤 대상에 대해 태도를 가진 소비자가 그 대상에 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접하고 자신의 초기 태도와 비교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기아 K7을 준대형 세단으로 인식하고 있던 소비자가 K8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고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던 K7에 대한 태도와 비교하는 상황이 여기 해당한다.

소비자의 초기 태도는 대상과의 사전 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판단을 위한 준거 틀로 작용한다. 사회판단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는 자신의 태도 준거 틀 주변에 수용과 기각의 범위를 형성한다.

초기 태도를 둘러싸고 있는 영역이 수용 범위이다. 새로운 메시지가 수용 범위에 놓이면 소비자는 그 메시지에 동의한다. K8이 K7 보다 한 단계 높은 클래스라는 메시지가 자신의 수용 범위에 놓이는 소비자는 “그래, 이름(브랜드)이 바뀌었으니 더 좋은 차가 맞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새로운 메시지가 기각 범위에 놓이면 소비자는 그 메시지를 거부한다. “이름(브랜드)만 바뀌었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수용 범위와 기각 범위의 중간 영역이다. 사회판단 이론에서는 이를 가리켜 비개입범위라고 부른다. 소비자가 새로운 메시지를 수용하기도, 거부하기도 마뜩잖은 범위를 말한다.

비개입범위에 놓인 메시지에 대해 소비자는 반신반의하고 판단을 주저하게 된다. 이런 소비자를 수용 범위에 속한 소비자로 유도하는 것이 마케터의 몫이다.

케이스스터디 기사에 따르면 기아의 마케터들은 순차적 정보 공개 전략을 선택했다. 단계적으로 차량 정보를 알림으로써 비개입범위의 소비자가 단번에 K8에 대해 수용과 기각을 결정하는 것을 막았다. 대신에 차례대로 공개되는 정보가 비개입범위의 소비자를 반신반의에서 수용으로 이끌도록 만들었다.

유력 대선 후보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언제나 처럼 중도층 표심에 따라 당락이 갈릴 전망이다. 마케터도 중도층(비개입범위의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야 새로운 브랜드의 탄생을 자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브랜드)만 바뀐 게 아니라, 그냥 신차가 출시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차’로 바뀌었고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만큼 자신 있다는 것을 형식이 아닌 내용(품질)으로 소비자를 설득할 때 비로소 ‘마뜩잖은’ 소비자들의 마음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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